[뉴스분석] MB 정상회담 거론 … 꼬리 무는 ‘접촉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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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연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 발언의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한 가장 구체적 언급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이 주말 진화에 나섰지만 여진은 계속됐다.

가장 큰 관심은 이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지난달 28일, BBC방송)가 ‘천기누설’인지 여부다. 정상회담 같은 민감한 이슈에 대해 이런 수준의 언급을 하려면 남북 간에 깊숙한 교감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하지만 통일부 당국자는 “대통령의 말을 과민하게 해석해 빚어진 해프닝”이라고 했다. 다른 고위 당국자도 “일반론으로 받아들이라”고 주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BBC에서 정상회담은 안 묻기로 했는데 갑자기 속사포처럼 물어보는 바람에 이 대통령의 답변이 좀 꼬였다”고 귀띔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31일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만날 것 같다’는 말이 자칫 지금 진행이 돼 빨리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오해를 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흐름을 다 알고 있으니까 감을 갖고 얘기하신 것으로 보면 된다”고 여지를 남겼다. 자신이 “(정상회담 추진 내막을) 다 아는 게 아니라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상회담 비밀접촉 수준도 궁금한 대목이다. 지난해 10월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싱가포르에서 비밀리에 만난 사실이 불거진 이후 비공개 접촉이 드러난 일은 없다. 여권 관계자는 “접촉을 하더라도 ‘이게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만남이다’ 하고 만나겠느냐”며 “남북 모두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대화의 끈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것은 전혀 없다”며 “이 대통령의 언급은 지난해 임태희-김양건 회동의 잔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내 대북접촉 라인에도 눈길이 쏠린다.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들은 요즘 정상회담을 거론할 때면 ‘임태희 교훈’이란 표현을 쓴다. 지난해 싱가포르 접촉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대북접촉 노하우가 축적된 국가정보원 쪽으로 접촉 라인을 바꾼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통일부가 북한의 통일전선부를 대화 파트너로 삼겠다는 의지가 강한 만큼 이 부분이 어떻게 정리될지도 큰 관심거리다. 여권 관계자는 “북측 창구는 지난번과 변화가 없다고 본다”며 김양건 부장이 여전히 챙기고 있음을 나타냈다.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서는 적어도 서너 차례의 밀도 높은 비밀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당국자의 설명이다. 핵심 의제인 북핵 문제를 어떻게 논의하고 납북자·국군포로는 어떤 수준에서 합의할지에 대한 밑그림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앞서 두 차례 평양에서 열린 회담 장소를 어디로 할지도 정해야 한다. 정부 당국자는 “정상회담 개최가 물밑에서 합의되면 남북 양측이 발표 시점을 맞추는 등 극도로 긴장하고 침묵하는 분위기가 역력해진다”고 말했다. 아직 임박한 징후는 없어 보인다는 얘기다. 정부와 여권 내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의지를 간파한 이 대통령이 ‘연내 성사’ 카드를 꺼낸 측면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영종·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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