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문화콘텐트 전쟁’ <중> 미국시장 노리는 일본 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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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국내 QTV가 수입 방영했던 미국 푸드네트워크의 ‘철인 요리왕(Iron Chef)’. 프로 요리사들이 치열한 요리 배틀을 벌인다. 원작은 일본 후지TV의 ‘요리의 철인’이다. [QTV 제공]

명절TV에서 한두 번은 봤음직한 ‘아메리카스 퍼니스트 홈 비디오’. 일상 중 황당한 상황을 포착한 프로그램이다. 미국 ABC에서 18년 이상 방영된, 장수 버라이어티 프로의 하나. 그러나 이 프로의 원작이 1980년대 일본 TBS의 ‘가토짱 켄짱 고기겐 텔레비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시청자 비디오 투고 형식을 유행시키며 80여 개국에 팔린 인기 포맷이다.

국내 QTV가 방영했던 미국 푸드네트워크의 ‘철인 요리왕(Iron Chef)’ 역시 후지TV ‘요리의 철인’이 원작이다. 전 세계 43개국에 포맷이 판매됐다. 프로가 새로 만들어질 때마다 회당 제작비의 일정부분이 후지TV에게 돌아간다(포맷 사용료는 7~15%이다). 칼이나 앞치마 등 관련상품 판매 수익, 이벤트 수익 등도 마찬가지다.

최근 세계 방송시장의 키워드는 포맷 판매다. TV 프로그램의 형식과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제작 노하우를 함께 판매하는 것이다. 최강자는 유럽이다. ‘빅 브라더’를 개발한 네덜란드의 엔데몰사가 대표적이다. ‘백만장자 결혼하기’ ‘서바이버’ 등 각종 리얼리티쇼를 만든 영국 회사들도 선두주자다.

◆포맷 강국으로 뜨는 일본=유럽 주도의 포맷 시장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강자가 일본이다. 1980~90년대 이미 포맷 사업에 눈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독창성과 저비용 구조의 버라이어티 포맷 생산기지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2008년 후지TV ‘휴먼 테트리스’의 코너인 ‘홀 인 더 월(hole in the wall)’은 영국 프리멘틀사를 통해 35개 국에 판매됐다. 출연자가 스트로폼 벽에 뚫린 구멍을 통과하는 단순한 구성으로, 세계적인 빅히트를 했다. 국내는 SBS ‘작렬 정신통일’에서 방영했고, 이탈리아에서는 비키니 여성이 나와 심야 시간대에 방영됐다. 후지TV는 2008년 미국 NBC 케이블에 버라이어티 게임쇼 ‘도주 중’의 포맷을 판매하면서는 아예 공동제작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19일 일본 도쿄 오다이바의 후지TV 사무실에서 만난 오오노 유키마사 후지TV 국제국 국차장은 “방송사 수익 다각화 차원에서 아이디어 비즈니스인 포맷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며 “언어와 문화차이로 한계에 부딪힌 수출의 벽을 넘을 수 있어 성장세가 큰 영역”이라고 말했다. 2009년 후지TV가 수출한 포맷은 50개 프로, 1300시간 분량. 미국 등 120여 개국 25개 언어로 판매된 ‘바이킹’, 99년부터 10년간 독일 미국 영국 등에 꾸준히 팔리는 ‘풍운! 다케시성’ 등 장수물도 상당수다.

포맷수출은 후지TV 총 수출액의 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는 과거 프로그램을 포맷화하는 작업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세계적 포맷회사와 손잡거나 공동제작으로 해외진출의 폭도 넓히고 있다. 오오노 차장은 “경기침체로 제작비 절감에 나선 방송사들에게, 이미 다른 나라에서 검증된 포맷 구매는 매력적이다. 방송사들이 원하는 것은 싸고 재미있는 프로다. 포맷 개발 때도 저렴한 제작비·보편성·독창성 등에 치중한다”고 밝혔다. 특히 언어가 필요 없는 스포츠나 액션게임이 성공 확률이 높다고도 소개했다.

◆국내 수출은 걸음마 단계=지난해 국제 프로그램 견본시 MIPCOM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06~2008년 세계 포맷시장 규모는 93억 유로(15조원)에 달한다. 2002~2004년 보다 45%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포맷수출의 변방국이다. 수입이 더 많다. KBS ‘1대 100’·tvn ‘예스 오어 노우’,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가 각각 엔데몰과 프리멘틀 포맷이다. SBS ‘맛 대 맛’ ‘슈퍼바이킹’, MBC ‘일밤’의 ‘브레인 서바이벌’ 코너처럼 일본 포맷 구입도 많다.

수출 프로는 중국 SMG에 팔린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이 대표적이다. KBS ‘도전 골든벨’ ‘해피 투게더-프렌즈’ 등도 수출 계약을 맺었으나 아직 본계약에 이르며 정규 편성된 사례는 없다. 가시적 성과가 기대되는 프로는 미국과 유럽에 각각 수출된 SBS ‘인터뷰 게임’과 MBC ‘우리 결혼했어요’다. 둘 다 파일럿 프로를 제작하고 본계약 성사 직전이다.

TV프로그램 유통업체인 에브리쇼의 권오형 대표는 “포맷 판매는 완제 판매보다 워낙 단계가 복잡하고 시일이 걸린다. 방송사 해외판매 부서와 제작 부서가 유기적으로 연계해야 포맷 개발과 수출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양성희 기자

◆포맷 바이블=시청률, 타깃 시청층, 편성전략부터 출연자 섭외기준, 사전 인터뷰 질문지까지 구체적인 연출 노하우를 정리한 것. ‘아메리칸 아이돌’ ‘브리튼즈 갓 탤런트’처럼 아주 비슷한 프로들이 제각각 독자적 포맷으로 팔리는 것도 이 프로그램별 바이블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포맷 비지니스는 방송 브랜드와 아이디어, 바이블을 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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