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경주지역 한글학자 최햇빛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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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달 30일 경북 경주에서 노환으로 타계한 최햇빛(93)옹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무명의 한글학자였지만 한글 보급을 통해 민족의 얼을 심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중학교 2년 중퇴라는 학력에도 불구하고 崔옹은 독학으로 일어.영어.독일어.중국어 등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주력한 것은 주옥같이 고운 우리말을 발굴해 후세에 전하는 일이었다.

崔옹을 스승으로 모셨던 신라문화동인회 김윤근(金潤根.57.경주공고 교사)씨는 "한글의 아름다움과 민족의 얼을 자라나는 세대에 바르게 알리려고 애쓰던 분" 이라고 회고했다.

경주 계림초등교를 졸업한 崔옹이 중학교를 자퇴한 것은 항일 정신에 기인한다.

일본서 중학 2년까지 다니다 일본인 선생.학생들과 잦은 충돌을 벌인 끝에 학교를 자퇴한 그는 중국 만주에서 청년기를 보낸 뒤 25살 때 경주에 돌아왔다.

5~6년간 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崔옹이 우리말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30살 무렵 영화 변사(辯士)를 하면서부터.

그는 당시 "우리가 비록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겼지만 한글은 일본어가 따라 올 수 없을 만큼 우수하다" 는 신념을 갖게 됐다.

'우리말 사랑이 곧 나라사랑' 임을 굳게 믿은 崔옹은 해방 후 농사를 지으면서 본격적인 한글 보급운동에 나섰다.

그의 한글사랑은 상상을 뛰어 넘는다.

1976년 최칠규라는 자신의 호적상 이름을 최햇빛, 부인의 이름을 김포근(97년 작고)으로 고쳤다.

경주지역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글 물결모임' 을 결성해 시민.학생들에게 한글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작고 전까지 이 모임에서 활동한 崔옹이 지어준 한글 이름은 무려 4천개가 넘는다.

경주의 마을 이름도 '해맞이 마을' '반달마을' '고운마을' '갯말' 등으로 바꿔 우리말의 빛깔과 향기가 그대로 묻어나도록 했으며 일상 대화를 통해서도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꿔부르는 데 앞장섰다.

며느리 김순자(金順子.44)씨는 "우리말이 아닌 간판을 보면 그 자리서 고쳐줬으며, 관공서에서 '감사합니다' 란 말을 쓰면 꾸짖다시피 해 '고맙습니다' 로 바꾸도록 했다" 고 말했다.

독립기념관 내 '미아보호소' 라는 안내 간판 역시 "미아는 일본식 한문" 이라며 항의해 '길잃은 아이 찾아주는 곳' 으로 바로잡았다.

崔옹은 제사 때 많이 쓰는 '신위' 를 비롯, '화환' '대축제' 같은 말도 '혼모심' '꽃두레' '대잔치' 등으로 각각 바꿔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이런 식으로 崔옹이 건의한 단어는 1천개가 넘는다.

정부는 뒤늦게 그의 이같은 공로를 인정해 한글날 특별상 등을 수여하기도 했다.

경주문화원 권혁규(權赫圭.70)사무국장은 "고인은 한글을 절대적으로 수호해야 한다는 소신을 평생 행동으로 옮겼다" 고 추모했다.

경주〓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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