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용병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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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789년 혁명으로 프랑스 절대군주였던 루이 16세는 파리 튈르리궁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기회를 엿보던 그는 1792년 8월 10일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탈출을 시도했으나 곧 발각돼 민중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곁을 지키던 7백68명의 스위스 용병들에게 루이 16세는 "너희는 프랑스와 상관이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라" 고 권한다.

용병들은 긴급회의를 열어 "한번 지킨 신의는 끝까지 지킨다" 며 만장일치로 결사항전을 결의했다.

하지만 대포로 무장한 시위대의 맹공에는 아무리 용맹한 그들도 속수무책이었고, 결국 전원이 전사한다.

스위스의 호반 도시 루체른에 가면 '고용주' 였던 루이 16세를 위해 목숨을 바친 스위스 용병들의 넋을 기리는 사자기념비를 볼 수 있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세계에서 가장 슬픈 조각' 이라며 기념비 앞에서 장시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루이 16세가 스위스 용병과 맺은 인연은 40년 후인 1831년 프랑스 '외인부대(레지옹 에트랑제)' 의 창설로 이어진다.

용병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명확한 계약체계와 명령계통을 갖춘 국영 용병부대로는 외인부대가 처음이었다.

식민지 전쟁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 창설된 외인부대는 전세계에서 3만여회의 전투를 치르면서 프랑스군의 별동대로 뿌리내렸다.

지금도 1백7개국 출신 8천5백명이 '명예와 충직' 을 모토로 프랑스 정부가 주는 월급을 받으며 프랑스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전통적인 용병 수입국 프랑스가 일본에 수출한 용병이 신화를 만들어냈다. 일본 2위의 자동차회사 닛산을 부실의 늪에서 구해낸 카를로스 곤(46)사장에게 일본 언론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프랑스 자동차회사 르노가 닛산을 인수하면서 르노의 부사장에서 닛산의 사장으로 간 곤은 "1년내 흑자전환을 못하면 사표를 낸다" 고 배수진을 쳤다.

그리고 '코스트 킬러' 란 별명에 걸맞게 상상을 초월한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1년 만에 닛산을 흑자로 돌려놓았다.

닛산의 신화는 용병이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많다. 일본인 사장이라면 인정에 얽매여 도저히 못했을 거라는 것이다.

내부의 자체개혁이 불가능한 한계기업에는 외부의 리더십이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일본 신문에 등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제 49개 한국 기업이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혀 퇴출됐다. 우리에게 '용병신화' 는 한낱 남의 얘기에 불과한 것인가.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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