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수렁에 빠진 부산상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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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종 사회부 기자

부산경제는 최악의 상황이다. 지난 8월의 신설 법인은 6년 만에 최소를 기록했고, 어음부도율도 올 들어 최고치를 나타냈다. 실업률도 2개월 연속 상승하는 등 각종 경제지표가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사태가 이런데도 부산상공회의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김성철 회장의 진퇴를 둘러싸고 9개월째 파행을 겪느라 마비 상태에 빠져 있다. 지난달 22일 노기태 상근부회장이 "상의가 정상화로 가는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며 사퇴하면서 사태가 전기를 맞는 듯도 했다. 김 회장이 사퇴의 전제 조건으로 노 부회장의 퇴진을 언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이 추석연휴 뒤 입장 표명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그러나 김 회장의 침묵은 계속됐다. 이에 노조가 김 회장의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나섰고, 상의 의원들도 퇴진 운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와중에 지난 2일 오후 수십명의 괴한이 상의에 난입, 김회장을 비난하는 벽보물을 뜯어내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상의가 식물 상태로 해를 넘기게 생겼다", "이성적 해결의 기회는 물건너 갔다."는 자탄이 터져나오고 있다.

부산상의가 이런 상태로 내년을 맞는다는 건 끔찍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와 세계기업인대회 등 경제회복의 전기가 될 국제 행사가 내년중 잇따라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부산상의가 제 기능을 회복하려면 집행부가 중심을 잡아야 하고, 상의의원들이 단결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나 김 회장 체제로는 분위기를 일신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지역 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이다.

부산지법이 김 회장의 횡령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자진 사퇴를 권고하고, 부산시가 자진사퇴를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회장으로선 사퇴 요구에 대해 억울한 심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퇴하지 않을 명분을 찾기에는 김 회장이 원인을 제공한 상처가 너무 깊다. 사퇴 명분을 찾는 것도 김 회장의 몫이다.

김관종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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