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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취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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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왕년의 테니스 스타 존 매캔로. 세계적인 유명인사라는 점 이외엔 국적.직업.나이.성격이 모두 다르다. 이렇다 할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한 TV의 대담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다. 각자 자신의 일과 인생론에 대해 얘기하다 화제가 취미로 향했다.

여가에는 무엇을 하며 일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는 질문에 파바로티는 '테니스', 매캔로는 '노래 부르기'라고 대답했다. 파바로티는 노래에 지치면 체력단련을 겸해 야외에서 테니스를 즐긴다고 했다. 반면 매캔로는 경기의 긴장과 연습의 피로를 풀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각자 상대방의 직업을 취미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두 사람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힘든 일이 뭐가 즐겁느냐" "참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다"며 비아냥 아닌 비아냥을 주고받았다. 파바로티는 힘든 노래 부르기를 취미로 삼는 매캔로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매캔로도 즐거운 노래 부르기를 직업으로 가진 파바로티가 왜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를 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농담조로 말했다. 세계 최고의 경지에 든 이들도 일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상당했던 모양이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는 일이 주는 스트레스와 취미가 주는 즐거움의 상대성을 일찌감치 터득한 경우다. 그는 젊은 시절 클라리넷 연주에 몰두한 적이 있다. 취미가 아니라 아예 프로 연주가의 길을 가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음악을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일단 직업으로 삼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훌륭한 취미의 즐거움을 잃지 않기 위해 음악 이외의 분야에서 직업을 갖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연주회를 하거나 자신의 연주를 취입한 CD를 내기도 한다.

취미나 여가의 즐거움은 일이 주는 긴장과 피로가 있을 때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파바로티는 성공한 테너였기에 테니스를 더 즐겁게 쳤고, 매캔로는 세계 챔피언이었기에 노래를 더 신나게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래서 일자리 문제는 생계 차원을 떠나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일이 있어야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