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동문들 “후배 건강검진 기금으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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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후배들의 건강검진 기금을 내 놓은 포스텍 기계공학과 출신 김성완(벤치 오른쪽)·권영삼(벤치 중앙) 동문이 모교를 찾아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포스텍 제공]

벤처기업인 세 사람이 지난해 12월 포스텍(포항공대) 기계공학과에 색다른 기금을 내 놓았다.

전달한 전체 금액은 800만원. 이들은 해마다 800만원씩 5년간 총 4000만원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기금의 용도는 기계공학과 대학원생들이 건강검진을 받는 비용으로 정해졌다.

주인공은 방산업체 쎄타텍을 운영하는 권영삼(44) 대표와 소프트웨어업체 누트파이브·자이벡 두 곳을 경영하는 김성완(40) 대표, 로봇을 개발하는 로보터스 김민철(42) 부사장이다.

권 대표와 김 부사장은 200만원씩, 김성완 대표는 회사 두 곳을 경영한다며 400만원씩을 내기로 했다. 이들 모두 이 대학 기계공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동문이다.

선배들이 건강검진비를 내놓은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기계공학과는 건강검진만 받았어도 막을 수 있었던 큰 불행을 이미 두 차례나 겪었던 것. 학생 둘이 재학 중 급작스레 죽음을 맞은 것이다.

2007년 기계공학과 박사과정을 다녔던 한 학생은 희귀병인 생식세포암으로 투병 중 요절했다. 앞서 1995년에는 학부에 다니던 나대웅씨가 백혈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이때 학교와 지역에서 1억여원의 성금이 모아졌다.

유족은 치료비로 사용하다 남은 2000여만원의 성금을 학교에 기부해 지금도 ‘나대웅의료기금’으로 남아 있다.

기계공학과는 이들 두 동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재학생의 건강 대책을 심각하게 논의했다. 그 결과 2008년부터 대학원생의 건강검진을 의무화하고 학과 예산을 쪼개 검진비를 지원했다. 검진기관을 학교로 불러들여 첫 해 전체 학생의 80%인 132명이 검진을 받았다.

이런 사정을 듣고 선배 기업인들이 기금 출연에 나선 것이다. 김민철 부사장은 특히 요절한 나대웅씨와 동기였고 절친한 사이였다. 거기다 김 부사장도 재학 중 오토바이 사고로 두개골에 금이 가 한달 동안 입원하느라 학교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김 부사장은 “4학년이나 대학원생이 되면 연구로 바빠져 건강을 챙기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언젠가는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후배들의 건강검진비를 보태는 데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계공학과 대학원생 160명 전원이 건강검진을 받는데 들어가는 돈은 500여만원. 한 사람에 8만원짜리를 3만원으로 할인 받아서다. 학과 측은 재학생들이 빠짐없이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1년에 두 차례 캠퍼스에서 건강검진을 실시하기로 했다.

기계공학과 박성진 교수는 “선배들의 건강검진비 기금은 내리 사랑의 표현”이라며 “선·후배 간 유대는 물론 교육적인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포스텍은 최근 들어 늘어나는 선배들의 자발적인 기금 출연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대학발전기금 출연에 동문이 많이 참여해야 명문대학으로 갈 수 있다는 것. 미국 유수의 대학은 동문 참여율이 30% 수준이다. 최고는 프린스턴대로 60% 가까우며 MIT 30%, 스탠퍼드대 33%다. 국내 대학은 1∼2% 수준이며 포스텍은 5.4%에 이른다고 한다.

기계공학과는 앞으로 이 기금의 참여자를 확대하고 용도도 다양화할 계획이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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