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 본 정치] 저격수 정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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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인들이 20세기 자국 역사에서 부끄러워하는 사건 하나가 1950년대에 불어닥친 매카시즘 열풍이다.

50년 2월 "미국 국무부 안에 수두룩한 공산첩자의 명단을 갖고 있다" 는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의 발언은 4년 동안 미국사회를 가치관의 혼돈으로 휘몰아쳤다. 매카시즘은 그뒤 정치학자들에 의해 저격수 정치의 전형으로 연구되고 있다.

2000년 첫 국정감사 도중 터진 '정현준 게이트' 와 함께 우리 정치권에선 저격수 정치 공방이 불붙고 있다.

DJ 저격수로 불리는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국감에서 '여권실세 K의원과 K씨 연루의혹' 을 제기한 게 발단이다.

鄭의원의 저격을 받은 민주당은 대변인실을 통해 97년 10월 이후 15건에 달하는 鄭의원의 폭로발언 일지를 공개해가며 '무책임한 루머제조기' '공작전문가' 로 맞저격하고 있다.

저격수 정치의 본질은 무엇이고 왜 생겨나는가.

저격수에겐 두 가지 불문율이 존재한다. 하나는 표적이 분명해야 하며 또 다른 하나는 저격의 폭발성이 저격수를 상하게 하지않을 만큼 커야 한다는 점이다.

鄭의원의 정치이력에는 저격수 면모가 깔려 있다. 75년 부산지검 검사로 임관한 鄭의원은 5공정권이 들어선 83년부터 12년간 안기부 파견 근무를 했다. 그 과정에서 DJ의 색깔론 공방을 다룰 기회도 있었다.

96년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鄭의원은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는 등 정국의 고비마다 현 여권을 괴롭히는 저격수로 이미지를 굳혔다.

대부분 그의 발언은 국감이나 국회 대정부 질문 같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이용하고 있다.

특히 그의 폭로는 현실정치에 존재하는 반 DJ정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권의 대응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저격수 정치는 후진정치의 유형이다. 고려대 함성득(咸成得)교수는 "남을 제거해야 내가 산다는 식의 생존정치의 전형" 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국정 운영의 파행과 혼선, 정국 대치상태가 오래갈 때 등장하는 게 저격수 정치다. 문제는 이런 저격수 정치를 가능케하는 토양의 후진성이다.

咸교수는 "검찰의 중립성이 여론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등 사회감시기능의 취약성이 거꾸로 탈출구로서의 폭로정치를 양산하게 한다" 고 지적했다.

옷 로비사건.신용보증기금 외압의혹 사건 등 대형 이슈 때마다 검찰 수사의 공정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선 비정상적인 탈출구인 폭로정치의 공간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저격수 정치논란을 끝내기 위해선 투명한 사회 감시기능의 회복이라는 토양개혁이 중요하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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