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량의 월드워치] 클린턴의 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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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투표일을 한 주 남겨놓고도 여전히 혼전 양상인 미국 대통령선거에 새로운 변수로 빌 클린턴 대통령이 등장했다. 클린턴은 31일부터 중부와 남부 여러 주(州)를 돌면서 앨 고어 지원 유세를 벌인다.

고어는 그동안 의도적으로 클린턴을 멀리해 왔다. 섹스 스캔들로 도덕성에 상처를 받은 클린턴이 나서봐야 득표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 이유지만, 더 큰 이유는 지난 8년간 부통령으로 클린턴의 그늘 아래 있던 고어가 마침내 홀로서려는 의지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 고어는 대통령이 될 자질에선 부족함이 없지만 지나치게 엄격하고 인간미가 부족한 것이 결점이다. 이에 비해 클린턴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긴 해도 잘생긴 용모에 인간적인 매력이 넘친다.

지난 20일자 뉴욕 타임스는 두 사람을 비교하는 흥미있는 기사를 게재했다. 우선 출신 배경부터 대조적이다.

거물 정치가를 아버지로 둔 고어는 일찍부터 미래의 대통령감으로 교육받았으며,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28세에 연방 하원의원이 됐다. 이에 비해 클린턴은 생부(生父)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고 계부의 학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노력만으로 예일대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에 유학했다.

성격도 판이해 클린턴이 외향적인 데 반해 고어는 내성적이다. 주말을 보내는 방식도 다르다.클린턴은 골프광이라고 할 만큼 골프를 즐기지만, 고어는 주로 가족과 함께 지내며 골프도 치지 않는다.

정치감각도 클린턴은 상황을 본능적으로 판단하고 속전속결하는 천재형인데 비해 고어는 정공법으로 착실히 해결해나가는 노력형이다.

대통령 도전 경력도 운명적이다.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선 고어 상원의원은 아칸소주지사로 무명인사였던 클린턴을 만나 지지를 부탁했으나 거부당했다.

4년 후 클린턴은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승리했고, 고어를 러닝 메이트로 삼아 백악관에 입성(入城)했다.

그후 8년 동안 고어는 '클린턴 이후' 를 생각해 왔으며, 마침내 클린턴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선거운동 과정에서 고어의 인간성이 문제로 부각됐으며 이를 해결할 사람은 클린턴뿐임이 드러났다.

칼럼니스트 랜스 모로는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에 게재한 글에서 클린턴을 모차르트, 고어를 살리에리와 비교했다.

살리에리는 음악가로서 모든 것을 갖추었지만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없었다고 평가하면서 고어는 떠나가는 청중을 붙잡기 위해 이제라도 클린턴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모로는 충고한다.

미국인들은 클린턴을 '정치천재' 로 평가한다. 그가 곤경에 처한 친구 고어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역사상 보기 드문 대접전이라는 이번 선거는 클린턴과 고어의 인간관계, 클린턴의 천재성이 또 한번 발휘될 것인가 등 막판까지 관전에 흥미를 더하고 있다.

정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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