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게이트' 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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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현준 게이트' 를 통해 사채업자와 벤처기업인의 탈법적인 머니게임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민의 예금기관인 신용금고가 '검은 커넥션' 의 자금줄로 이용됐으며, 코스닥시장에선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사설 펀드가 활개를 쳤다.

코스닥시장의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신주인수권부사채(BW)나 전환사채(CB)를 터무니없이 싼 값에 발행한 후 이를 대주주에게 넘겨 거액의 차익을 챙기도록 하는 편법도 동원됐다.

◇ 불법 머니게임의 무대가 된 금고=경영감시 장치가 허술했던 금고는 사채업자와 빗나간 벤처기업인들이 사금고로 이용하기 위해 군침을 흘려온 게 사실이다.

동방금고만 해도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진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18%대인 우량 금고였다. 그러나 속으론 총여신 1천7백여억원의 3분의1인 5백여억원이 불법 대출이었다.

이 불법 대출금은 돈세탁 과정을 거쳐 머니게임의 판돈으로, 정.관계 실세들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뿌려졌을 것이라는 게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드러나고 있다.

◇ 사설(私設)펀드를 이용한 주가조작=말 그대로 사설이기 때문에 누가 가입해 있는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번에 금감원 장내찬 국장이 가입한 평창정보통신 투자용 사설펀드도 대부분의 가입자가 차명이나 가명으로 돼있다는 게 금감원 설명이다.

장국장도 동방금고 직원의 투자분 속에 자기 몫을 섞어 놓아 동방금고 노조의 폭로가 없었다면 적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코스닥시장이 '한참 '달아올랐을 때 이같은 사설펀드가 판쳤다는 건 증권업계의 공공연한 비밀. 정.재계 실세들이 이 사설펀드에 차명이나 가명으로 투자해 거액을 챙겼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 제도 허점 틈탄 CB.BW 발행=대주주나 특수관계인에게 BW나 CB를 저가로 배정, 시세 차익을 올리는 방법은 전형적 수법의 하나다.

최근 불법대출 사건을 폭로한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 사장의 경우 지난해 2월 회사로부터 1억5천만원 규모(1만2천5백주)의 전환사채(전환가격 1만2천원)를 배정받아 한달뒤 주가가 올랐을 때 주식으로 전환해 약8천만원의 평가차익을 얻기도 했다.

코스닥기업이 발행하는 전환사채의 경우 지난해8월 최소한 1년이 지난 이후 전환이 가능하도록 규정이 바꿨지만 당시에는 다음날부터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했다.

전환가격이 1만2천원이었고 다음날 주가는 1만8천원이었다. 결과적으로 정사장은 하루 만에 7천5백만원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금감원 로비설에 휘말려 있는 유일반도체의 경우 지난해 6월 11일 김모씨에게 30억원 규모의 BW를 발행했다.

문제는 이 BW 중 27억원어치가 바로 당일 회사의 대표이사이자 대주주인 장성환씨에게 넘어갔다는 것. 이 BW는 당시 10만원을 넘던 유일반도체 주식을 2만원에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10월 24일 현재 장사장의 시세차익은 31억8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경민.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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