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3차개방 석달…한·일 대차대조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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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문제는 장르의 다양화다. "

한국영화의 대일(對日)시장 공략을 향한 영화평론가 김의찬씨의 지적이다.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한.일 영화교류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작품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지난 6월 일본 대중문화 3차 개방조치(영화는 12세 관람.15세 관람가, 국제 영화제 수상작 수입 허가) 이후 일본영화의 국내 상륙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월말부터 9월말까지 3개월 동안 수입 추천된 영화는 모두 26편. 각각 98년 10월과 99년 6월에 발표된 1, 2차 개방 발표 이후 추천된 작품 25편을 상회하는 수치다.

3개월 통계이지만 일본의 기세가 만만찮음을 알 수 있다. 양적으로 치면 '영화 역조현상' 이 뚜렸하다. 올 9월까지 일본에 수출된 한국영화는 '섬' '은행나무 침대' '텔미 섬딩' 등 장편 8편과 '단풍' 등 단편 5편에 그쳤다.

하지만 영화전문가들은 다소 느긋한 입장이다. 숫적으론 일본의 공세가 예사롭지 않지만 아직 일본영화의 국내 장악력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개봉한 일본영화 가운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드물다. 서울 관객 40만명을 기록한 '춤추는 대수사선' 을 제외하곤 이렇다할 히트작이 없다.

국내 1호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화제를 모았던 '무사 주베이' 는 6천5백명, '포스트맨 블루스' 는 3만명을 동원했다. 비교적 선전한 '링2' 는 16만명을 기록했다.

반면 한국영화의 일본진출 여건은 예전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 일단 수출가격이 높아졌다. 98년에 수출된 화제작 '초록물고기' 와 '8월의 크리스마스' 의 일본 판권은 고작 1만달러 남짓.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일본영화 수입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액수였다.

그러나 올해 수출된 영화들은 기록이 좋다. '섬' (10만달러) '은행나무 침대' (30만달러) '단적비연수' (70만달러) '텔미섬딩' (50만달러) '유령' (40만달러) '비천무' (50만달러) 등 일본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게다가 올초 '쉬리' 가 일본에서 1백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하는 등 한국영화를 즐기는 일본 관객층도 점차 늘고 있다. 다음달에도 '박하사탕' '텔미 섬딩' '미술관 옆 동물원' 이 도쿄의 주요 극장에 걸린다. '쉬리' 열풍을 이어받을지 기대되는 시점이다.

영화진흥위 해외담당 이건상 부장은 "한국영화에 투자하거나, 한국감독을 초대해 작품을 만들려는 일본 영화제작자들의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며 "영화분야의 대일 역조현상은 조만간 뒤바뀔 수 있다" 고 말했다.

하지만 신중론도 만만찮다. 평론가 김의찬씨는 "제작규모와 편수에서 일본영화는 한국을 압도하고 있다" 며 "우리 영화도 블록버스터형 대작보다 저예산형 장르영화를 많이 만들어 일본시장을 안정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고 제안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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