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시트콤 '프렌드' 은근한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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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며칠 전 방송에서 김유진 언니가 카페에서 기타치며 음치처럼 노래하는 부분…어디서 많이 봤단 생각을 했습니다. '프렌드' 에서 극중 피비가 했던 것과 같지 않나요?"

'멋진친구들' '세 친구' 등 국내 인기시트콤 홈페이지에는 이처럼 미국시트콤 '프렌드' 와 유사성을 지적하는 글이 곧잘 올라온다.

케이블 채널 동아TV가 '프렌드' 의 첫방송을 시작한 1996년 당시만 해도 '해외시트콤은 국내 시청자 취향에 안 맞는다' 는 것이 방송가의 지배적 통념. '코스비가족' 등 지상파에서 방송한 미국 인기시트콤이 큰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프렌드' 는 다음.네츠고.유니텔 등 각종 온라인상에 동호회가 속속 결성될 정도로 단단한 시청층을 형성하고 있다.

해외시트콤의 인기는 '프렌드' 뿐이 아니다. 뉴요커들의 애정관을 적나라하게 묘사, 미국에서도 화제가 됐던 '섹스 앤 더 시티' 를 방송 중인 HBO는 "이 프로 때문에 HBO를 신청하기로 했다" 는 신규가입자가 이어지는 형편. 코미디TV가 이달초 방송을 시작한 영국시트콤 '커플즈' 역시 인터넷에 빠르게 반응이 올라온다.

"원제 그대로 '콜드 피트(Cold Feet)' 라고 했으면 첫회부터 만사 제쳐놓고 봤을 텐데…영국을 비롯한 유럽쪽에서는 빅히트한 드라마로, 한 번 보면 끊기 힘든 중독성이 있다."

해외시트콤의 주요 시청층은 이처럼 현지에서의 평가까지 빠르게 귀동냥하는 젊은이들. 더빙없이 자막으로 대사를 이해하는 것에 개의치 않는 시청자들이다.

자체제작비율이 낮은 케이블 방송사들이 앞다퉈 소개하기 시작한 해외시트콤은 현재 방송 중인 것만도 줄잡아 예닐곱편. 젊은 남녀들의 사랑와 일상이 소재인 '프렌드' 나 '커플즈' , 법률사무소가 무대인 '보스턴 저스티스' (드라마넷),

지구정찰에 나선 외계인들의 시각에서 미국인의 일상을 익살스럽게 그려내는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 (드라마넷)

가족간의 갈등을 극단적으로 설정해 그로테스크한 웃음을 주는 '못말리는 번디가족' (NTV) 등 저마다 차별화한 소재와 탄탄한 캐릭터는 매니어성 시청자들에게 '골라보는' 재미를 제공한다.

미국시트콤 관련 논문을 펴낸 바 있는 MBC예능국 최영근PD는 "미국시트콤은 한 해 1백여개의 시놉시스 가운데 2, 30편의 파일럿프로그램을 제작, 그 중에서 한 두 편을 정규프로로 채택한다" 고 해외시트콤의 기본 경쟁력을 인정한다.

하지만 " '프렌드' 를 지상파에서 방송했다면 성공적인 시청률을 얻기 힘들었을 것" 이란 짐작이다.

별도의 가입비를 낸 케이블 시청자의 적극성이 인기의 큰 비결이란 것이다. 케이블방송 전체의 미미한 점유율로 미뤄볼 때 전체 시청자수도 그리 큰 규모는 아닐 터. 하지만 '프렌드' 의 예에서 보듯, 해외시트콤과 꼼꼼히 비교하는 매니아들의 시선을 국내시트콤 제작진들도 갈수록 의식할 수 밖에 없을 것같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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