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만화 삼국지 발표 시작한 박봉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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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박봉성(51)씨. 한국 현대 만화사를 이야기할 때 도저히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이현세.고행석과 함께 1980년대 한국 만화 부흥을 주도한 그는 '20시 재벌' (83년) '신의 아들' (84년)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인기를 얻으며 최고의 히트 만화가로 찬사를 받았다.

특히 대본소 혹은 만화방으로 불리는 만화 대여점용 만화를 집중적으로 만들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대본소 만화의 황제' 로 불리기도 했다.

30대 가운데는 대여점에서 라면을 먹어가며 정신없이 그의 만화를 넘겼던 기억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요즘도 신문 연재와 대여점용 만화 제작 등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그가 최근 스스로 '필생의 야심작' 이라고 부르는 장편 만화 '삼국지' 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전 50권으로 기획된 '삼국지' 는 현재 20권까지 작업을 완성한 상태. 지난주 1, 2, 3권이 나왔으며 앞으로 2~3주에 한 권씩 발간할 예정이다.

- 왜 갑자기 '삼국지' 인가. 기업만화 등이 주류를 이룬 기존 작품 세계와 너무 동떨어지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삼국지' , 즉 '삼국지연의' 를 읽은 이후 수도 없이 되풀이 읽으면서 자연스레 언젠가는 만화로 그리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 '삼국지' 만큼 만화화에 적합하면서도 시도하기 어려운 문학 작품도 드물 것이다. 3년간의 준비 작업 끝에 발간을 시작했다."

- 고우영씨가 오래 전에 그린 '만화 삼국지' 나 일본 작가들의 '삼국지' 와는 어떻게 다른가.

" '삼국지' 를 읽다보면 부분적인 이야기에 매몰돼 전체적인 조망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만화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 펴내는 '삼국지' 는 만화적 재미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매권 인물.역사 설명 등 충실한 자료를 부록으로 집어넣은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무한한 인내와 인덕(仁德)을 타고난 유비, 과감하고 날카로운 판단력과 지략으로 성공한 조조의 성공술을 섬세하게 대비하는 데 주안점을 둘 것이다."

박씨는 " '삼국지' 출간을 위해 시중에 나온 대부분의 '삼국지' 를 분석하는 한편 삼국지학술연구회 등의 도움을 얻어 많은 자료를 수집했다" 며 "예컨대 거칠고 무식한 이미지가 굳어진 장비가 실은 시와 그림에 출중한 인물이었다는 등의 새로운 해석은 이런 자료 수집 덕분" 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이 아니라도 '삼국지' 는 공들여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박씨 특유의 부담없고 재치있는 유머, 극적인 이야기 구성이 역시 돋보이는데다 기존 그의 작품에서는 보기 힘든 세밀하고 정성들인 그림까지 볼만하다.

현재 '박봉성 프로덕션' 산하에 70여 명의 후진을 거느리고 있는 그는 일부의 비판이 계속되고 있는 이른바 만화 공장식 제작 방식에 대해 "한국 특유의 만화 시장 상황이 낳은 고유한 제작 형태로 이해해 달라" 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토종 만화가 박봉성씨가 펼칠 새로운 '삼국지' 의 세계가 기대된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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