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신앙] 사진작가 이경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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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연꽃만 찍는 사진작가 이경순(49.사진)씨는 개량한복에 바랑 하나 메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얼마전까지 서울 학고재에서 전시회를 마쳤고, 21일부터는 부산 영광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시작한다. 지난 6개월간 20kg이나 되는 사진가방을 메고 연꽃이 피는 전국의 연못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모았다.

"연꽃이 그냥 좋아요. 진흙뻘 속에서도 청정한 모습, 멀리 퍼지는 은은한 향기는 너무나 신비하죠. 특히 새벽 햇살이 어둠을 가르는 순간 꽃잎을 여는 연꽃을 보면 정말 예뻐요. "

이씨의 본업은 부산 전시회가 열리는 영광갤러리가 세들어 있는 '영광도서' 라는 서점 운영이다. 23년전 결혼해 남편과 함께 서점을 가꿔 지금은 부산 서면 지역의 문화중심으로 키웠다.

이씨가 연꽃에 빠진 것은 불교와 사진이라는 두 가지의 매력 때문이다. 불자가 된 것은 '인연' 이라고밖에 설명이 안된다.

20년전 시집도 안 간 여동생이 자살한 충격에 이씨가 떠올린 것은 초등학교 시절 소풍갔다 본 김해 은하사 섬돌위의 하얀 고무신이었다.

친한 이웃과 성당에 나가기로 약속한 이씨가 갑작스런 동생의 죽음에 직면해 절집을 떠올린 것이다.

49재를 은하사에서 치르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새벽예불은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있다.

사진과의 인연은 아들이 사진학과에 진학한 것이 계기다. 활동적인 이씨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아무 것이나 찍다가 98년 전북 전주 덕진공원 연꽃밭에서 이슬방울을 머금은 영롱한 모습을 보고는 다른 모든 생각을 버렸다.

이후 매년 연꽃 사진만으로 전시회를 해왔고, 두번째 전시작품은 연꽃이 유명한 천안 인취사의 불사기금으로 전부 내놓았다.

"바쁘게 살라는 팔자인가 봐요. 그게 좋아요. 뭐든 마음 먹으면 열심히 하고, 그러다 보면 매사가 잘 풀리고. 그저 연꽃처럼만 살고 싶어요. "

연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자는 것이 적은 욕심은 아니다. 불자로서 청정한 삶을 산다는 의미까지 보태면 큰 욕심일 것이다.

그러나 "매사가 즐겁다" 는 이씨는 그 욕심을 이룬다기보다 이루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인 듯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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