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영빈 칼럼

그때 그 자리에 누가 서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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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시청 앞 대규모 보수집단 집회가 있던 날, 386세대 여기자 이 차장은 광화문에서 시청 앞 집회 현장을 거쳐 신문사까지 걸어오면서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1987년 6월항쟁이 있던 날, 대학 4학년이었던 그녀는 신촌로터리에서 도보로 서소문을 거쳐 시청 앞 집회까지 참여했다. 선두엔 양김(兩金)이 서있었고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전대협 의장이 흰 두루마기를 입고 사자후를 토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광화문 쪽으로 움직이자 경찰이 진압에 나섰다. 시위대가 흩어지면서 여대생은 군중에 떼밀려 넘어졌고 숱한 사람이 그녀 등을 밟고 지나갔다. 그녀는 여기서 죽는구나! 느꼈다. 등 뒤엔 경찰이 밀려오고…. 그녀는 죽기살기로 일어서 프라자호텔까지 뛰었다고 했다. 그때 그녀가 서 있던 광장을 이젠 부모 세대들이 가득 메우고 분노하고 있으니 역사는 거꾸로 반복되는가.

*** 부모세대 불만과 분노의 결집

부자간 세대의 시청 앞 시위 임무교대 현상은 뭘 뜻하는가. 비록 기독교 단체가 대거 참여했다지만 조직 없는 어른들이 10여만 또는 30만명이 모였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사건이다. 개발독재 세력이 권좌에서, 주류세력에서 밀려난 지 6월항쟁으로 치면 17년 지났고 정권으로는 3대째 민주화정권이다. 이 세월 속에서 개발독재 세력은 철저히 매도당했고 비주류 찬밥 신세가 됐다. 개발의 공로는 어디에 가고 독재만 부각시켜 우리를 내모느냐는 데 그들의 분노가 있을 수 있다. 국가 중흥, 1만달러 시대, 한강의 기적이라는 열매는 너희들이 다 따먹으면서 허리띠 졸라매고 그 나무를 키운 우리들은 왜 홀대하느냐는 불만과 분노의 결집이라 볼 수도 있다.

또, 그 이후 집권한 이른바 민주화 정권이 이룩한 게 뭐냐는 반문이 있다. 민주화 세력이 반대하고 투쟁만 했지 창출하고 생산해낸 업적이 뭐냐는 울분이다. 어떻게 세운 경제고 안보인데 지금 와서 이렇게 무참히 허물고 적 앞에 발가벗고 나서느냐는 우려도 포함됐을 것이다. 때로는 지역끼리 나눠먹고 코드끼리 뭉치면서 개발세력을 인정하지 않는 데 대한 울분도 있을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 들어서 과거사 청산, 보안법 폐지, 수도 이전, 사학관련법, 언론 개혁 등 반시장적 개혁에 따른 정권의 정체성 우려가 분노와 울분을 더욱 부채질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진 좋다. 그럼 이들 보수세력의 집단시위가 과연 나라를 위해 어떤 의미를 갖는가. 시청 앞 시위의 명시적 목표는 보안법 철폐 반대였다. 과연 보안법 존치는 국가안보에 적합하고 개정 또는 철폐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가. 유신 5공시절의 멘털리티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은 바뀌었다. 남북화해 협력을 위해, 지난 시절 인권탄압의 도구를 이젠 바꿀 때가 된 것이다. 진정한 보수라면 군사독재시절 정치탄압을 위해 보안법을 악용했던 과거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야당 대표가 법안 명칭 개명과 정부 참칭 부분 삭제까지 들고나올 정도로 보안법 개정에 여야 정치권이 접근했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다만 대통령이 철폐를 주장하자 여권이 하루아침에 철폐로 돌아서고 야당도 무조건 반대로 돌아서면서 타협과 절충의 여지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보안법 철폐 반대를 위해 10여만의 보수가 모였다면 결코 자랑스럽지도 나라 장래를 위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 보수집회는 한번으로 족해

어른은 어른스러워야 하고 보수는 보수다워야 한다. 장강의 앞물은 뒷물에 밀려 흘러가게 마련이다. 꼴보수로 냉대받고 정권이, 대통령이 모른 척한다고 대안 없는 시위를 해봤자 과거영광에 대한 향수로 비칠 뿐이다. 보수의 진가가 무엇인가. 합리적 사고와 현실적 대안 제시다. 지난 권위주의 시절, 젊은 시위대를 향해 어른들이 수없이 되뇌었던 반대를 위한 반대를 지금 와서 늙은 어른들이 떼로 몰려 외친다면 어른스럽지도 보수적이지도 않다.

결국 민주화 세력과 개발세력이 자리를 바꿔가며 시청 앞 시위를 벌이는 대결구도로 간다면 나라의 장래는 없다. 물론 노무현 정부가 보수.진보를 아우르지 못하고 민주화.개발세력을 함께 포용 못한 자업자득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정권의 책임은 유한하지만 나라를 지켜야 할 보수집단과 어른집단의 책임은 무한하다. 보수집회는 이번 한번으로 족하다. 어른들이 나서 보수와 진보의 쓸모없는 집단 소모전에 탐닉하기보다는 나라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보다 멀리 보고 보다 높이 뛸 수 있는 지혜를 젊은 세대들에 전수하는 것이 어른 보수들이 해야 할 책임있는 자세다.

권영빈 편집인

*** 반론

10월 8일자 오피니언면 '그 때 그 자리에 누가 서 있나'제하의 칼럼과 관련, '반핵반김 국민협의회'는 지난 4일 열린 '보안법 사수 국민대회'가 나라의 안보와 장래를 걱정하는 청장년을 포함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집회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