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력 잃은 증시…해외 악재에 탈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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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주식시장이 '13일의 금요일' 을 무사히 넘기지 못했다. 국내 구조조정의 지연과 국제 반도체가격의 하락 등으로 비틀거리던 주식시장은 13일 중동의 전운(戰雲)과 미국증시 급락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다시 크게 떨어졌다.

클린턴 미 대통령의 북한방문이란 호재성 소식도 전혀 먹혀들지 못했다.

종합주가지수는 이날 장중 한때 5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공세에 맞서 주식을 조금씩 사모으던 개인투자자들은 이제 탈진상태에 빠졌다. 증시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에선 주가의 바닥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고 입을 모았다.

◇ 자생력 잃은 증시=리젠트증권의 안광철 투자전략팀 차장은 "국내 증시는 이미 자생력을 잃었다" 며 "13일 시장에 충격을 안긴 중동사태처럼 외부 악재가 계속되면 한차례 충격이 더 올 것" 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중동전쟁 발발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대우증권 홍성국 투자정보부장은 "일단 지켜봐야겠지만, 중동사태 자체는 큰 걱정이 안된다" 며 "과거 걸프전 때의 경험 등에 비추어 돌발 악재에 의한 주가 폭락은 사태가 진정되면 빠른 반등으로 이어지게 마련" 이라고 설명했다.

洪부장은 "이번 충돌에도 불구하고 원유값이 지난번 고점인 배럴당 38달러를 넘어서지 않으면 증시에 추가 부담은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대신경제연구소 신용규 연구위원은 "지금 주식을 살 때는 아니지만 이미 갖고 있는 투자자는 투매에 가세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며 "단기 반등을 기다려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고 밝혔다.

◇ 미국 변수가 더 큰 걱정=중동사태보다는 미국 증시를 주시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미국 증시는 경기 하강과 기업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연일 급락해 다우지수가 10, 000선, 나스닥지수는 3, 000선을 각각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미국에선 최근 정보통신(IT)산업과 신경제를 비관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일투신운용 김성태 주식운용팀장은 "10년간 장기호황을 보였던 미국의 경기와 주가가 주저앉으면 세계 경제는 동반 침체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며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심각한 타격을 받게될 것" 이라고 우려했다.

金팀장은 "미국인들은 여유자산의 50% 정도를 직간접으로 주식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면 소비도 크게 줄 수밖에 없다" 고 설명했다.

동원경제연구소 온기선 이사도 "최근 국제 반도체값이 떨어지고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발을 빼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국경제가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반영한 것" 이라며 "앞으로 국내 증시는 미국 증시의 직접적 영향권 아래 놓일 것으로 본다" 고 진단했다.

◇ 구조조정에 매진해야=중동사태와 미국 주가하락 등 대외변수는 어차피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우리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 충격을 어느정도 흡수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굿모닝증권 이근모 전무는 "국내 시가총액의 30%, 유통주식의 50% 정도를 갖고 있는 외국인들이 주식을 처분하는 한 주가지수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며 "이제라도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워 외국인들의 발걸음을 되돌려야 한다" 고 말했다.

현대투신증권 이명규 전무는 "정부는 단기 주가부양책을 고민하기보다는 앞만 보고 구조조정에 매진해야 한다" 고 밝혔다.

김광기.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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