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코스모스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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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을이 깊어간다.

아침이면 벌써 냉기가 몸속으로 스며들고, 천지에 요란하던 풀벌레 소리도 이미 끊어졌다.

먼 산은 높은 곳부터 단풍을 물들여 내려오고, 길가의 가로수는 겨울채비를 위해 나뭇잎을 떨구며 감량을 시작한다.

***멕시코 원산의 귀화식물

이 쓸쓸한 계절에 그래도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가을꽃이다. 가을산의 청초한 들국화와 해묵은 고가(古家) 장독대의 국화꽃에는 어릴 때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이 있다.

옛 사람들은 국화꽃을 무척 좋아했다. 고려 상감청자 찻잔에 가장 많이 나오는 문양 중 하나가 국화꽃이며, 조선 청화백자 중에는 들국화를 그린 명품이 많다.

옛 문인들은 국화를 즐겨 노래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강진땅에 유배온 지 10여년 되던 어느 가을날 "우리집 가까이 있는 심씨네 뜨락엔 해마다 국화꽃이 종류별로 48종이 피었었지" 라며 회상의 시를 읊고서는 "비오는 이 가을날 다산의 초부(樵夫)는 눈물을 흘리며 이 글을 쓴다" 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국화꽃에서 좀처럼 그런 시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 친구가 아파트 베란다를 노란 국화.흰 국화 화분으로 늘어 놓았더니 아내는 꼭 상가(喪家)같다고 투정하더란다.

현대인에게 국화 대신 가을날 서정을 북돋워주는 것은 코스모스다.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는 가을의 여정(旅情)을 일으키는 우리 국토의 표정이 됐다.

가을걷이를 시작하는 누런 들판과 어우러진 도로변의 코스모스가 여린 바람에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흔들릴 때면 애잔한 감상(感傷)조차 일어난다. 그래서 코스모스를 노래하는 것은 소녀 취미로 돌리고 사나이 대장부들은 모름지기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을 감춘다.

올해 나는 만주땅 압록강변에서 가을을 맞았다. 그곳 들판의 길가에도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었다. 고구려의 첫 도읍인 환런(桓仁)의 오녀산성으로 오르는 길, '선구자' 의 고향 해란강가 일송정으로 가는 길, 그 모두가 코스모스 꽃길이었다. 그래서 만주땅은 내게 조금도 낯설지 않았고, 더욱 더 잃어버린 고토(故土)처럼 다가왔다.

그런 코스모스이건만 정작 이 꽃은 우리의 재래종이 아니라 멕시코가 원산지인 외래(外來)식물이다. 코스모스가 이 땅에 뿌리내린 것은 불과 1백년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최순우(崔淳雨).이태준(李泰俊)같은 지난 세대의 안목(眼目)들은 코스모스의 아름다움 앞에 이국적인이라는 단서를 달고 가을꽃으로 억새나 과꽃을 더 높이 쳤다.

그러나 불과 3백년 역사의 고추가 우리 음식의 상징이 된 것처럼 코스모스도 어느새 어엿한 귀화(歸化)식물이 됐다.

식물학에서 말하기를 외래종이 들어오는 것은 우리의 토양이 약할 때라고 한다. 우리 토양이 강하면 아무리 힘 센 외래종도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자리공처럼 못된 외래종이 요즘 판치는 것은 마구잡이로 땅을 파헤쳐 생땅이 곳곳에 드러나면서 황무지 현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양을 다시 안정시키면 재래종이 결국 외래종을 이겨낸다니 우리는 나쁜 외래종을 물리치기 위해선 우리의 토양을 굳게 지켜야 할 일이다.

***조화로운 토착화 좋은 例

그러나 외래종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외래종이 들어옴으로써 우리의 식물분포에 다양성도 생긴다. 코스모스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신작로 공사가 한창일 때였다.

땅을 갈아 길을 닦으니 길가는 생토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고, 이 황폐한 자리에 멕시코의 메마른 땅을 원산지로 둔 코스모스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지금도 고속도로건 국도건 차도변에 코스모스가 무리지어 피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외래종이지만 미국자리공은 재래종을 고사시키면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지만, 코스모스는 재래종이 감당하지 못하는 빈 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외래종이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사랑하게 된다.

더욱이 코스모스처럼 어여뿐 꽃임에야. 그리하여 이제 우리 강산의 가을날에는 산에는 들국화, 뜨락엔 국화꽃, 길가엔 코스모스로 어우러지며 '코스모스(조화)' 를 이루고 있다. 코스모스의 이런 정착과정을 보면 나는 항시 외래문화의 토착화라는 거대 담론의 실마리를 여기서 생각하게 된다.

유홍준 <영남대 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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