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전망대] 유고에 놀란 가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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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 2주간 전세계가 유고를 주목했다. 결국 피플파워가 승리했고, 세계는 아낌없는 축하와 격려를 보냈다. 그런데 유독 중국만 달랐다.중국 내부사정에 밝은 홍콩 언론의 베이징(北京)특파원들이 전한 내용은 이렇다.

"지난주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긴급 소집됐다.유고사태를 토론하기 위해서였다.

장쩌민(江澤民)주석=예기치 못한 사태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안정이 최우선이다. 불똥 하나가 전 평원을 태워버릴 수 있다. 유고에서 우리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상무위원 A=옳은 말씀이다. 유고사태는 시민의 승리가 아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등에 업은 반사회주의자들의 폭거다.

상무위원 B=동유럽 내 또 하나의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전복시킨 미국과 나토는 지금 의기양양한 상태다. 유고의 몰락은 수하르토의 하야나 국민당 패퇴보다 우리에게 더 큰 위협이다.

상무위원 C=미국의 다음 목표는 쿠바가 될 공산이 크다. 카스트로에게 믿을 만한 후계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종 목표는 우리(중국)가 될 것이다. "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추위가 대단한 모양이다. 환호작약했던 세계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그리하고 보니 최근 중국 움직임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느낌이다.

중국은 최근 인터넷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 진작부터 있어 왔던 얘기지만 그 강도가 사뭇 달랐다.

공안(公安)과 우징(武警.폭동 및 시위진압용 특수경찰)의 조직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상교양 시간도 두배로 늘렸다.

바티칸이 1백20위의 중국 순교자와 선교사를 성인으로 시성하자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제국주의자들의 하수인" 이라며 바티칸과 정면으로 맞섰다. 요컨대 내부 단속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바깥 다독거리기에도 열심이다. 상하이 파이브(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내 공조가 강화됐고, 10일엔 베이징에서 아프리카 4개국 수뇌가 참석한 가운데 '중국.아프리카 협력논단' 이 열렸다.

일부 인사들은 중국이 외부 위협을 구실로 세대교체.민주화 등 일련의 개혁조치를 늦출까봐 우려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반동적인 제국주의자들과 직접 맞서 싸운 경험이 없다. (이들에게 정권을 맡길 경우) 예기치 못한 도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럽다." 江주석이 최근 들어 자주 입에 담는 말이라고 한다.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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