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석의 Wine&] 백악관 만찬의 단골손님 로버트 몬다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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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지난해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수상식 후 열린 만찬에선 노르웨이식 디너와 함께 미국 와인 로버트 몬다비의 카베르네 소비뇽(사진)이 등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와인잔을 들어 평화를 위한 건배를 제의했다. 로버트 몬다비의 와인메이커 주네뵈브 얀센은 “훌륭한 자리에 와인을 소개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로버트 몬다비가 살아있었다면 더 기뻐했을 것”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로버트 몬다비는 미국 와인업계의 대부로 불린다. 그는 53세에 자신의 이름을 건 양조장을 차렸다. 당시 가족들과 함께 운영하던 와인회사가 잘나가고 있었지만 프랑스 와인과 경쟁할 수 있는 고급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동생과 갈등 끝에 홀로 뛰쳐나왔다. 저가 와인 산지로 통하던 나파밸리에서 프랑스 오크통을 사용하자 사람들이 미쳤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의 노력은 곧 결실을 거뒀다. 1976년 미국 와인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시음회에서 프랑스 와인을 제친 것. 당시 1위를 차지한 미국 ‘스태그스 립’의 와인 메이커 위니아스키가 로버트 몬다비 양조장 출신이었다.

1981년엔 프랑스 1등급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와 손잡고 명품 ‘오퍼스 원’을 내놓았다. 오퍼스 원의 첫 빈티지는 한 상자(12병)에 2만4000달러에 팔려 세상을 놀라게 했다. 몬다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탈리아와 칠레 등지에 진출해 ‘루체’ ‘세냐’ 등 고급 와인을 생산했다. 그는 2008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캘리포니아 와인 홍보대사를 자청했다.

그는 백악관과도 남다른 인연을 자랑한다. 로버트 몬다비는 애초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미국에서 성공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초청한 만찬에 참석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만찬이 취소됐다. 케네디를 이은 린든 존슨 대통령이 이탈리아 대통령 초청 만찬에 그를 다시 부른 덕에 백악관에 갈 수 있었다. 존슨 대통령은 이후 백악관 만찬에서 미국산 와인만 사용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현재 백악관에선 이탈리아 국빈들이 방문하면 로버트 몬다비의 와인을 내놓는다. 2008년 10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와의 만찬에서 로버트 몬다비의 ‘카베르네 소비뇽 리저브’를 대접했다.

동생 피터와의 불화로 독립해야 했던 그는 말년엔 두 아들 간의 갈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여기에 와인시장의 공급 과잉으로 2004년 결국 콘스털레이션 브랜즈에 회사를 매각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와인의 황제, 로버트 몬다비』(줄리아 플린 사일러·중앙북스)는 몬다비가 보낸 영욕의 세월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손용석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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