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전산원 영화영상학부에 진학한 천안월봉고 오장은군이 자신의 시집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Q 어떻게 시집을 내게 됐나.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써왔다. 많이 썼던 건 아니지만 생각날 때마다 습관처럼 썼다. 본격적으로 시를 배우면서 쓰기 시작한 건 1년 전인 예비 고3 시절부터다. 그때는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고민이 많았다. 시를 쓰면서 ‘이렇게 평생 예술을 하면서 먹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공부한답시고 책상에 앉아 쓴 시가 300편 가까이 된다. 이 시들을 내 예술인생의 시발점으로 삼으려고 했다.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 드린 후 시를 추려 두 권의 시집을 냈다. 50부씩 밖에 인쇄를 못했지만 누가 뭐래도 내 첫 작품집이다.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Q 시집 제목이 청춘예찬이다.
“난 청춘, 꿈, 열정, 이런 단어들에 끌린다. 관심사이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청춘이기에 꿈꿀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청춘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난 그 특권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현실이 답답했다. 전국 고3들이 모두 똑같은 자세로 공부하는 게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3이라고 하면 ‘공부는 잘하니?’ ‘대학은 어디 갈래?’하고 당연히 묻게 되는 그런 게 싫었다. 지금도 꿈이 없는 친구들을 보면 불쌍하다. 그런 친구들은 서울대에 간대도 부럽지 않다. 꿈이 있는데도 포기하고 성적에 맞춰 대학가는 친구들도 안타깝다. 청춘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이런 내 생각과 고민을 시에 담았다.”
Q 시를 쓰는 게 어렵진 않았나.
“국어학원 선생님께 도움을 받았다. 내가 쓴 시를 처음으로 선생님께 보여드렸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께서는 ‘네 시를 쓰기 전에 일단 남의 시를 베껴 쓰는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칭찬해주실 거라 기대했는데 냉정한 조언에 속상했다. 그 때부터 시인들 전집을 사서 필사했다. 현대시인들의 독창적인 시를 많이 따라 썼다. 그걸 다 한 후에야 하나 둘씩 내 작품을 제대로 쓰기 시작했다. 시를 쓸 땐 그냥 내 생각과 감정에 맡겼다. 며칠간 한 편도 못 쓸 때도 있었고 하룻밤에 열 편을 쓰기도 했다. 소재는 주변에서 찾았다. 예를 들어 ‘옥상에서’라는 시는 정말 옥상에 올라가 썼다.”
Q 원래 시에 관심이 많았나.
“시뿐만이 아니다. 문학, 영화, 음악 등 문화예술 모두에 관심이 많다. 장르는 달라도 예술은 모두 하나로 통한다고 생각한다. 모두 ‘이야기’가 소재다. 난 이야기를 좋아한다. 좋아하니까 계속 하고 싶고 더 배우고 싶다. 학교에서도 방송반 활동을 했고 방학 때는 영화캠프에도 다녀왔다. 책이나 영화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본다. 예술과 함께할 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난 예술인이 천직인 것 같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확실하니까 부모님도 응원해 주신다. ‘네 인생이니까 네 맘대로 한 번 해봐라’고 하신다. 대학 진학도 이쪽으로 했다.”(※오군은 동국대 전산원 영화영상학부에 진학했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내가 진학한 영화영상학부엔 매년 과제가 있다. 일년에 한 편씩 단편영화를 만드는 거다. 이때 내 시나리오를 영화화해보고 싶다. 생각해놓은 내용도 있다. 우리 역사 중 정사가 아닌 야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다. 일반적인 역사의 평가를 거꾸로 뒤집어보는 거다. 또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시도 쓰고 싶다. 지금 낸 시집 『청춘예찬』도 더 많이 인쇄해서 서점에 가져다 놓고 싶다. 사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말하려면 끝도 없다. 그냥 뭐가 됐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얼마 전엔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먹는 걸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예술은 먹는 것보다 더 좋다. 그러니까 굶어 죽지 않는 한 예술을 하면서 살아야지. 이런 생각을 했다. 하하.”
글·사진=고은이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