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경제총수 14명 대화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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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일 오전 11시30분. 청와대에 70년대부터 현 정권까지 경제팀장 14명이 모였다. 현 경제상황을 '난국' 으로 규정한 김대중 대통령이 어려움을 이겨낼 고언(苦言)을 듣기 위해 불렀다. 오찬모임은 2시간10분간 이어졌다.

金대통령은 "경제가 어렵다, 제2위기설이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 조언을 부탁했다. 남덕우(南悳祐).김준성(金埈成).정재석(丁渽錫)전 부총리 등 70년대 이후 개발경제의 주역들을 비롯해 과거의 경제 총수들이 의견을 말하는 동안 金대통령은 꼼꼼히 메모했다.

평소와 달리 金대통령은 끝부분에서 3분밖에 발언하지 않았다. "여러분의 귀중한 말씀을 듣고 나니 느낀 것이 많다" 면서 "자주 이런 모임을 갖겠다" 고 약속했다.

대화는 진념(陳稔)재경장관이 "하부구조가 부실해 향후 6개월이 도약과 좌절을 판가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환위기 후 가장 어려운 상황" 이라는 경제상황 브리핑부터 시작했다.

▶김준성〓부동자금(1백조원 추정)을 증권시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세금 없는 장기채를 발행해야 한다. 워크아웃 기업에 퇴직 금융인이나 전 경영인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을 끌어들이거나 팔아야 한다.

우리가 기업을 보호하고 배타적 상황에서 외국자본을 유치하려 하면 기업도 안팔리고 값도 내려간다. 정부가 여론을 너무 고려말고 꾸준히 밀고가는 게 중요하다.

▶남덕우〓4대 개혁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노동개혁이다. 지금같은 노사분위기에서 개혁이 안된다. 정부는 빨리 처리하기 위해 경영진에 책임을 지우는데 경영진은 노조와 타협하게 된다. 구조조정과 관련, 살릴 기업은 과감히 살리고 퇴출할 기업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공적 자금 지원을 먼저해 가치를 올린 뒤 매각하는 것이 좋다.

제일은행의 경우 5천억원에 팔아 16조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먼저 16조원을 투입해 은행가치를 올려서 팔았다면 값어치가 높아졌을 것이다. 대우자동차와 한보철강 매각실패와 관련해 빨리 해결하기 위해 너무 서두른데 문제가 있다.

▶정인용(鄭寅用)〓부실기업 정리는 누군가 책임의식을 갖고 해야 한다. 부실정리를 확실히 해야 한다.

▶이승윤(李承潤)〓시장자금 조달에 문제가 있다. 예금 부분보장제를 금융개혁과 동시에 시행할 것인가를 재고해야 한다. 좋은 제도도 시장의 수용능력이 없을 때는 부작용이 생긴다.

▶조순(趙淳)〓방향은 좋지만 많은 것을 하다보니 부작용도 있다. 닭잡는 칼로 소를 잡으려 했거나 명분에 얽매인 것도 있고, 준비가 부족해 정책목표에 실망감을 주는 것도 있다.

▶최각규(崔珏圭)〓거시경제지표와 체감경기 차이, 서민이 느끼는 격차가 문제다. 경제위기론도 시민 기업이 느끼는 어려움 때문이다. 예금부분보장제는 사회적 통념상 인정되는 범위에 한해 보장하는 것이 좋다. 시기도 '지금은 '좋지 않다.

▶나웅배(羅雄培)〓워크아웃은 채권단의 채무조정, 경영진의 확실한 경영, 노조의 동참의지가 3박자를 이뤄야 한다. 외환위기로 다시 가지는 않는다.

▶홍재형(洪在馨)〓개혁은 선택적.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금융.기업구조조정을 하면서 예금보장제도를 하면 돈이 크게 움직이는 혼란이 올 것이다.

▶김만제(金滿堤)〓우리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5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도 자금경색 해소가 안될 것이다. 금융기관이 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같다.

▶정재석〓단호히 위기가 아니라고 본다. 개혁을 정확히 해야 한다. 성장률.경상수지.물가가 이상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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