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역사왜곡 정·재·학계 조직적 개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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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최근에 불거져 나온 일본 역사교과서의 개악(改惡) 실상을 폭로하는 자리에 나선다.

한일관계사학회(회장 오성.세종대 교수)는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知韓派) 역사학자 두 명을 초청, 이 문제에 관한 긴급 심포지엄을 7일 오후 2시 서울 신문로 한글회관 1층 강당에서 연다.

주제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교과서 검정' .

주제 발표자는 일본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워크' 의 다와라 요시부미(俵義文) 사무국장과, 실제 역사교과서 집필자 중의 한 사람인 도쿄(東京) 가쿠게이(學藝)대 기미지마 가즈히코(君島和彦) 교수다.

토론자는 서울시립대 정재정 교수와 정신대대책협의회 강정숙 연구원이다.

다라와 사무국장은 지난달 19일 도쿄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과서 왜곡은 우익의 협박과 정부.정치권의 압력이 맞물리면서 조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고 폭로한 인물.

그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정부 문부성의 역사 개찬(改撰)' 이란 논문에서 교과서 왜곡의 중심세력인 일본 우익들의 '거미줄 계보' 를 소개한다.

정계.재계.언론계.학계.연예계 등의 광범위한 인맥 분포는 왜곡 실상이 즉흥적 발상에서 나온 게 아니란 것을 역설한다.

그 근거로 그는 지난 5년간 일본의 우익 인사들이 교과서의 개정과 관련, 무려 5백여 회의 대중 집회를 열어 '여론몰이' 를 한 사실을 든다.

기미지마 교수는 주로 학문적 분석을 통해 '왜곡의 역사' 를 설명한다. 일본 근대사 전공자인 그는 국내 학계에도 비교적 잘 알여진 사람으로 그동안 일본의 우경화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우익적 역사교과서의 등장과 그 내용' 에서 그는 조선의 개항(開港)에서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사건별로 그동안의 왜곡 실태를 상세히 드러낸다.

이번 교과서 파동이 시작된 것은 문부성에서 심사가 진행 중인 중학교 역사교과서 8종의 내용이 최근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종래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던 7개의 출판사와 '자학사관(自虐史觀)' 의 극복을 주장하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이 제작, 검정을 신청한 교과서들은 97년의 검정판에 비해 우경화 경향이 두드러진다.

종군위안부를 기술한 교과서는 현재 7종에서 3종으로 줄었고, 그나마 '위안부' 란 용어로 명기한 것은 니혼(日本)서적 1종 뿐이며 나머지는 '위안시설' 로 표현했다.

대부분의 교과서가 '침략' 이란 용어 대신 '진출' 이란 용어를 택했고 심지어 일본의 식민지 지배 사실 자체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난징(南京)대학살에 대한 기술도 크게 후퇴해 일개 '사건' 으로 둔갑했다. 이같은 일본의 조직적 작태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대처는 지극히 미온적인 게 사실.

중국과 북한이 준엄하게 문제점을 지적한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오성 교수는 "학계 차원에서라도 이 점을 냉정히 지적해 주는 자리가 있어야 할 것 같아 긴급 심포지엄을 마련했다" 고 말혔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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