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규모 6.1 강진 … 공포에 질린 아이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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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제82공중강습사단 부대원들이 19일(현지시간) 헬기에서 내린 뒤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 대통령궁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군은 치안 확보와 인도적 임무 수행을 위해 대통령궁 일대를 장악했다고 밝혔다. [포르토프랭스 AP=연합뉴스]

아이티에서 또다시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20일 오전 6시3분쯤(현지시간)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서쪽으로 56㎞가량 떨어진 곳에서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A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이 미국 지질조사국(USGS)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지진으로 서너 차례에 걸쳐 건물이 크게 흔들리자 공포감에 사로잡힌 주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피해 상황은 즉시 알려지지 않았다. 강력한 여진이 잇따름에 따라 구호 작업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진앙의 깊이는 지표에서 22㎞였다.

한편 미군은 19일(현지시간) 아이티의 대통령궁 일대를 접수했다. 행정의 중심인 이곳을 장악해 치안을 확립하기 위해서다.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군 병력 100여 명이 헬기를 타고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대통령궁에 내렸다. 미군들은 완전 무장한 상태였다. 이들은 궁 주변에 대한 수색을 마친 뒤 주민들에게 물과 음식 등 생필품을 나눠 줬다. 미군 관계자는 “대통령궁과 인근 지역에서 치안 확보 등 인도적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아이티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 대통령궁 장악=미국은 현재까지 아이티에 해병대 2200명 등 모두 1만1000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또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실과 병실을 갖춘 미군 USS 컴포트함도 현지에 추가로 급파했다. 이 함정은 의료진 600명을 비롯해 수술실 12개와 병상 250개를 보유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아이티 지원에 본격 나서고 있다. 캐나다는 군함 2척과 병력 2000명을 포르토프랭스 남부의 자크멜과 레오간 지역에 파병했다. 이탈리아·스페인·베네수엘라 등도 해군 함대를 파견할 계획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미 현지 활동 중인 평화유지군 병력 9000명 외에 3500명을 추가로 보내기로 했다.

대규모로 파병된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비난하며 한때 신경전을 벌였던 프랑스는 한발 물러섰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보여준 신속한 행동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미론자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은 여전히 미국의 대규모 파병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차베스는 최근 “미국이 구호를 명분으로 아이티를 점령하려고 한다.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군이 대통령궁을 장악한 데 대해 일부 아이티인도 반발하고 있다. 한 주민은 “대통령궁은 아이티의 얼굴이고 자존심인데 미군이 이곳을 접수했다”며 불편함 심기를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1915~34년 아이티를 무력으로 점령했고, 57~86년에는 프랑수아 뒤발리에 독재정권을 지원해 아이티 국민은 미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69세 할머니 극적 구조=지진 발생 8일째를 맞은 19일(현지시간) 기적적인 구조 소식도 전해졌다. 포르토프랭스 포트아우프린스 성당의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에나 지지(69) 할머니는 166시간을 버텼다. 이 성당에서 기도를 하던 중 매몰됐던 그는 들것에 실려나오면서 “신이여, 감사합니다”를 연방 외쳤다. 탈수증이 심하고 다리가 부러졌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지지 할머니는 “2~3일 전까지 인근에 매몰됐던 다른 생존자와 대화를 나눴다”며 “하지만 구조되기 얼마 전부터는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성당에서 화를 당했던 조셉 세르그 미오 대주교는 끝내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는 성당 내 자신의 집무실 의자에서 앉은 상태로 숨졌다.

포르토프랭스=정경민 특파원,
서울=최익재·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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