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교과서 한국 관련 내용 "틀린 것보다 빈약한 게 더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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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은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이지만 미국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그 위상에 걸맞은 대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술돼 있는 분량 자체가 중국.일본과는 비교도 안 되고, 미얀마나 아프리카의 소국 정도에 불과합니다."

한국학의 대가로 알려진 마크 피터슨(58) 미국 브리검영대 교수(한국학)는 "한국에 대해 잘못 기술한 내용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관련 내용을 늘리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지난 3일 미국 교과서 출판담당자 10여명과 함께 방한해 16일까지 머물 예정인 피터슨 교수는 이번에 굵직한 자료를 들고 왔다. 미국 내 중등학교에서 사용되는 83개 역사 교과서를 미국사.세계사.세계지리사.세계문화사 등 4개 범주로 나눠 한국 관련 내용의 양과 질을 분석한 것이다.

그는 한국에 대해 그런대로 충실하게 다뤘다고 생각하는 책에 100점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 책과 비교해 다른 책들의 수준이 어떤지를 분석했다. 그는 "분석 결과 세계사의 경우 29권 중 21권이, 미국사는 36권 중 23권이 50점 미만인 수준 미달로 평가됐으며, 세계지리사는 12권 중 11권이, 세계문화사는 6권 중 5권이 50점 미만일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고 말했다.

잘못 기술된 내용도 적지 않았다. 교과서 가운데 'The World '는 한국의 수도를 광주라고 표기했으며(p.535), 'The Heritage of World Civilization'에는 한국 장군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가 서아시아에서 아랍에 패배했다(p.289)는 엉뚱한 내용이 있었다. 'World Geography Today'에는 한일합병이 1895년에 됐다(p.401)고 적혀 있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웹사이트(http://kennedy.byu.edu/staff/peterson/INDEX.HTM)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피터슨 교수는 14일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회 서울선교부가 개최하는 강연회 등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소개하는 한편 우리 정부와 공동으로 미국 교과서 분석작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피터슨 교수는 이번 방한의 또 다른 목적으로 "동행한 미국 내 교과서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경복궁 등 서울의 유적지와 수원.부여.공주.경주 등지의 역사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각국 교과서 출판사 관계자들을 한국에 초청해 제대로 된 한국을 보여주고, 그들이 자료를 요청할 때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정부 측에 권고했다.

하버드대에서 아시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피터슨 교수는 한국에 15년간 체류하며 한국풀브라이트장학재단이사장(78~83년) 등을 역임했고, '유교사회의 창출' 등 한국학에 관한 세 권의 저서를 냈다. 또'미국인들과 광주사태'란 논문을 통해 당시 신군부의 만행과 미국의 방관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두 딸을 입양한 피터슨 교수는 "고1인 큰 딸은 치어리더를 하며 쾌활하게 지내고 있고, 초등학교 6년인 둘째딸도 바이올린을 배우며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글=하지윤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 바로잡습니다

10월 7일자 27면 '미 교과서 한국 관련 내용, 틀린 것보다 빈약한 게 더 문제'기사 중 '(교과서 가운데 하나인) 'The Heritage of World Civilizations'에는 한국 장군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가 서아시아에서 아랍에 패배했다'는 엉뚱한 내용이 있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마크 피터슨 교수가 잘못 기술돼 있다고 지적한 사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에 대해 한 독자가 "그 한국 장군은 고선지 장군일 것"이라면서 "엉뚱하거나 잘못 기술된 내용이 아니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피터슨 교수가 예로 든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 text mentions that the T'ang army was led by a Korean general (unnamed). He was defeated by Arabs near Samarkand in western Asia." 해석을 하면 (이름이 없는) 한국 장군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가 서아시아에 있는 사마르칸트 근처에서 아랍군에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고선지 장군에 관해 오래 연구해 온 박태근 관동대 석좌교수에게 자문한 결과 박 교수는 "고구려 출신으로 당나라 장수가 돼 세차례 서역 정벌에 나섰던 고선지 장군을 일컫는 내용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패배한 지역은 사마르칸트가 아니고 탈라스(Talas)이며, 두 곳은 부산과 평양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이름이 없다는 것도 잘못된 설명이며, '한국 장군'이 아니라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군'이라는 게 옳은 표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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