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경쟁력이다] 정선 5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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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5일장에서 한 난전 상인이 펼쳐놓은 붓과 벼루.향로 등 갖가지 골동품을 관광객들이 신기한듯 바라보고 있다. [정선 군청 제공]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지난달 22일 강원도 정선군 정선 5일장터. '정선 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이 은은히 울려 퍼지는 장터에는 추석 장을 보러 온 1500여명의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여기저기서 상인과 손님 간 흥정이 오간다. 산나물을 파는 한 상인은 손님에게 덤으로 한 움큼 더 얹어주기도 했다. 시장번영회 김부흥(47) 회장은 "손님 중 절반 이상이 외지 관광객"이라고 귀띔했다.

시골장터에 불과했던 정선 5일장이 전국 규모의 '관광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을 오가는 전용 관광열차를 운행하고, 조상의 한이 담긴 아리랑 등 정선지역 특유의 테마를 주변 관광지와 연계한 것이 적중했다. 5일장을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지난 5년여 동안 정선 5일장을 다녀간 관광객 수는 50만여명에 이른다.

◆ 시골장과 관광열차의 만남=끝자리 2, 7일마다 열리는 정선 5일장을 관광상품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공무원들의 발상 전환이 한몫했다.

1990년대부터 지역경제의 버팀목이었던 탄광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정선 5일장도 날로 쇠락해 갔다. 상가는 매물을 내놓아도 입주자가 없어 문을 닫는 곳이 점차 늘어났다.

인구도 크게 줄어들자 철도청은 정선을 오가는 열차노선 폐쇄를 검토했다. 이때 정선군 관광기획팀이 국내 유일의 비둘기호 열차인 정선선을 정선 5일장과 접목시켜 관광 열차로 운행하자는 제안을 철도청에 했다. 철도청도 이를 받아들여 99년 3월 '비둘기호 타고 정선 5일장 가는 관광 열차'를 처음으로 운행했다. 이 열차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여행사들도 정선 5일장 관광 여행 상품을 잇따라 내놓았다.

정선 5일장의 성공을 배우기 위한 지자체들의 벤치마킹이 줄을 이었다. 지금까지 경북 안동.충북 청주 등 20여개 지자체와 지방의회에서 정선군과 정선 5일장터를 견학했다.

정선군 금석재(50) 관광기획담당은 "지지난해와 지난해의 연속적인 태풍 피해가 없었다면 관광객은 훨씬 많았을 것"이라며 "정선 5일장이 명실상부한 정선군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지역경제 파급 효과도 크다. 99년부터 정선군이 정선 5일장을 찾은 관광객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1인당 지출 비용이 첫해 4만3200원에서 2000년 5만4000원, 2002년 5만6900원, 2003.2004년 각 6만원 등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벌어들인 돈도 줄잡아 269억8600만원에 달한다.

초창기 80여곳에 불과하던 난전도 140여개로 늘어났다. 30여년째 장날마다 난전에 나온다는 권순녀(72) 할머니는 "예전에는 하루 5만원 벌기도 벅찼는데 관광 열차 운행 이후 하루 20만원은 족히 번다"며 환하게 웃었다. 영세 상인들에게도 짭짤한 수입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5일장 활성화는 다 죽어가는 재래시장도 살렸다. 점포별로 차이가 있지만 평균 50% 이상 매출이 늘어났다는 것이 시장번영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 네트워크가 경쟁력=정선 5일장이 성공한 것은 열차 여행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터 외에 지역 관광지를 연계한 삼각 네트워크의 구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선군은 관광열차가 운행을 시작한 이듬해인 2000년부터 화암동굴과 화암약수터.항골계곡.인형박물관 등 4개의 관광 코스를 개발했다.

또 문화관광부로부터 관광문화상품으로 지정된 '정선아리랑 창극'을 시장을 찾는 관광객을 상대로 5년째 무료 공연하고 있다. 택시로 관광지를 둘러보는 3개의 관광 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조양강 래프팅 관광 투어 코스도 내놓았다.

이들 관광 상품은 낮 12시30분 도착한 열차 관광객들이 장터에서 물건을 산 뒤 코스별로 관광버스를 타고 돌아볼 수 있도록 시간표가 짜였다.

정선군은 이 밖에 정선선 꼬마 열차의 일부 구간인 여량리~구절리 간에 내년부터 철도청과 합작해 레일바이크 50대와 꼬마 유람열차를 운행한다. 또 주변에 폐객차를 이용한 카페와 1300여평 규모의 인라인 스케이트장도 조성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북면 여량리 아우라지 일대 3만7450평에 총 220억원을 들여 아리랑 박물관.주막거리 등을 갖춘 테마 관광지를 2006년까지 만들 방침이다.

김원창 군수는 "단순 관광을 즐기도록 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관광 상품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며 "정선 5일장에 오면 천혜의 자연을 엿볼 수 있는 열차 여행과 옛 고향의 냄새를 물씬 맡으며 장을 본 뒤 관광도 즐길 수 있도록 관광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선=홍창업 기자

*** 정선 장 성공 요인은…

-'덤'과 흥정이 있는 넉넉한 시골 인심

-계절별로 풍성한 특산물과 토속 먹거리.

-오지에 대한 도시민의 신비감 자극.

-천혜의 풍광을 감상하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5일장 전용 관광 열차 운행.

-지속적인 연계 관광지 개발로 관광객에게 다양한 볼거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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