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 본 정치] 김대통령의 용인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김대중(DJ)대통령은 정권 출범 뒤 모두 7명의 장관을 경질했다.

부동산 투기의혹을 받았던 주양자(朱良子)전 보건복지부장관부터 한빛은행 사건 연루설이 있는 박지원(朴智元)전 문화관광부장관까지다. 송자(宋梓).손숙(孫淑).김태정(金泰政)씨가 한달도 못돼 불명예 퇴진했다.

이런 과정에서 金대통령은 자신의 신임을 중시하는 특유의 용인술을 드러냈다.

여권 관계자는 24일 "새로 인연을 맺은 인사일수록 문제가 있어도 발탁 약속을 오래 지키려는 게 金대통령의 원칙" 이라고 말했다. 인사가 온정(溫情)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朴전장관의 경우 金대통령은 막판까지 여론과 신임 사이에서 망설였다. 측근들의 '여론 중시론' 제기에 金대통령은 "그 사람이 공(功)이 크지 않느냐" "증거가 없다" 며 꿈쩍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장관 교체의 여론과 타이밍을 중시했던 김영삼(金泳三.YS)전 대통령과 대조적이다. YS는 朴전장관을 둘러싼 한빛은행 의혹을 두고 "나는 조금만 의심이 가도 목을 잘랐다" 고 말한다. YS 시절 장관들의 평균 임기는 13.3개월이었다.

지난해 옷로비 사건 때도 金대통령은 "죄가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다" 며 5.24 개각을 통해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을 법무장관으로 기용했다. 1997년 대선 직전 그가 DJ 비자금 수사유보를 결정한 대목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여론을 따르기보다 '내 사람' 중에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는 '측근 관리학' 이 깔려 있다. 이는 아랫사람들의 충성을 관리하는 통치의 요령이기도 하다.

때문에 여권 일각에선 金대통령이 장관 교체의 타이밍을 놓쳐 민심장악과 국면전환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직 장관은 "사퇴 결심을 하기 전에 청와대 기류를 알아보니 '언론에 신경 좀 써라' 는 쪽이었다" 고 말했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내가 먼저 사표를 썼다" 는 것이다.

천용택(千容宅.전 국정원장) 국회 국방위원장과 박태영(朴泰榮.전 산자부장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金대통령의 신임에 힘입어 재기에 성공한 사례다.

상황에 따라 버렸던 사람을 끝까지 안고 가야 충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DJ 용인술의 단면을 말해준다.

반면 여권의 '인재 풀' 이 좁아 金대통령의 인물 선택에 한계가 있고, 새로운 사람을 쓰는 데서 오는 위험을 피하려는 데서 그같은 용인술이 나온다는 지적도 있다.

이양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