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SCD·SDIG 이문화 관리 성공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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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베를린(독일)〓홍승일 기자]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남동쪽 1백10㎞쯤인 체르니츠. 주민 1천3백여명인 작은 고을에서 SCD라는 한국계 브라운관 유리공장(연면적 2만5천평)은 브란덴부르크주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공한 외국계 기업으로 꼽힌다.

올들어 폴크스바겐.메르세데스 벤츠 같은 현지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벤처마킹하겠다며 찾아와하루 1만마르크(5백만원)씩 '수업료' 를 내고 배울 정도다.

삼성코닝이 1994년 1백% 출자해 인수한 이 공장은 6년만에 매출이 5배, 생산성이 7배로 뛰었다.

역시 베를린 근교 슈프레 강변에 자리잡은 브라운관 공장 SDIG 역시 삼성SDI가 92년 쓰러져 가는 기업을 1마르크에 인수해 흑자로 탈바꿈시켰다.

삼성 관계자는 "옛 동독에 있는 이들 기업은 동.서양 기업문화를 접목하고 사회주의권 기업을 자본주의 실험무대에 올렸다는 점에서 남북경협이 무르익는 시점의 우리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고 말했다.

◇ 시장경제 이념 전파〓진주환 SCD 법인장은 "한마디로 회사가 잘되면 개인도 잘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체험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고 말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회사를 처음 인수했을 때 임직원들은 모래알이었다.

사무실 구조는 제각각 벽을 친 한두평의 밀실공간이었고 '내 일만 완수하면 끝' 이라는 보신주의.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해 있었다.

이 곳에서 5년째 일해온 한 삼성 주재원은 "사회주의권 특유의 비능률과 폐쇄적 문화와의 사투였다" 고 회고했다.

삼성이 우선 착수한 것은 인센티브 제도의 도입. '제안 마일리지' 제도를 만들어 공정.사무 등의 비능률을 개선하는 아이디어를 내도록 독려해 채택되면 수당.인사고과 면에서 우대했다.

요즘엔 개인이나 부서별로 서로 제안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한 근로자가 낸 '용해 공정의 폐열 활용방안' 은 유럽 제안대회 대상까지 받았고 연간 3천만원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

◇ 현지화 작업〓지난 7월 SCD에선 삼성이 인수한 이후 가장 파격적인 인사가 있었다.

조직을 개편하면서 볼커 헨젤(51)씨를 부사장 겸 공장장으로 승진 발령하고 주요 보직 간부의 80%를 현지인으로 채웠다.

엔지니어 출신의 헨젤 부사장은 94년 삼성 인수 당시 과장급이었지만 회사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그는 "독일 통일은 동독 사람들에겐 실업의 공포.상대적 박탈감 같은 어두운 면을 많이 주었지만 지난 6년동안 일한 만큼 보상받는 시스템이 얼마나 신바람 나는지 깨달았다" 고 말했다.

SCD의 법인장이 결재하는 서류는 한달에 두세건에 불과하다. 대부분 현지인에게 공장 운영을 맡긴다. 현재 10여명인 한국인 주재원도 점차 줄일 계획이다.

사내 '청년 중역회의' 를 만들어 경영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미래의 현지인 경영자를 기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노조의 힘이 강한 독일의 특성을 존중하는 경영도 필수적이다.

박태식 SDIG 법인장은 "노조 역시 집단행동에 나서기보다 대화로 문제를 푸는 전통이 자리잡았다" 면서 "전국 노사평의회에서 정하는 산업별 임금수준을 따르고 있다" 고 말했다.

직원 가족이나 지역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펼친다. SCD는 최근 전 세계 삼성코닝 4개 현지 공장 직원들을 독일로 불러 축구대회를 열었다.

SDIG는 매년 6월 직원 가족을 회사로 초청해 회사를 알리는 행사를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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