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냐 M&A냐 목적 택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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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앞으로 특정기업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는 투자자는 보유 목적을 공시할 때 단순투자나 인수.합병(M&A)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5일 금융감독원은 현행 '5% 룰'을 악용한 증시 교란행위를 막기 위해 이런 내용의 개선안을 마련해 8일 시행하기로 했다. 5% 룰이란 특정기업의 지분을 5% 이상 취득하거나 이미 5% 이상을 가진 상태에서 1% 이상 보유 지분율 변화가 있으면 5일 이내에 공시해야하는 규정이다.

◆ 구멍 뚫린 공시제도=외국인투자자 A사는 최근 특정회사의 지분을 5% 이상 산 뒤 주식취득 목적을 '수익창출'이라고 공시했다. 그러나 이 기업은 임원을 바꾸는 등 경영권을 행사했다. 주식취득 목적으로 임의로 써 넣을 수 있는 현 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보유 목적을 경영권 확보나 장기투자 등으로 공시해 마치 M&A가 추진중인 것처럼 투자자를 속인 뒤 곧바로 보유주식을 팔아치웠다가 감독당국에 적발된 사람도 7명이나 된다. 금감원은 특히 개인이 경영권 인수가 목적이라고 공시한 뒤 주가가 오르면 팔아치워 차익을 챙기는'수퍼개미'사건도 이런 공시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 어떻게 바뀌나=개선안은 5% 보고서의 자율 서술식 기재방식을 '선(先) 택일, 후(後) 서술'방식으로 이원화했다.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와 '지배권 취득, 영향력 행사'중에서 택일한 뒤 M&A 가능성을 의미하는'지배권 취득, 영향력 행사'를 선택한 경우에는 ▶경영진 변경계획▶지분 추가 취득계획▶지분 처분계획 등과 같은 세부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

5% 보고서를 공시 5일 후 정정하거나 2차로 정정할 때도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서 '기재 내용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안내 메시지가 뜨도록 해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도록 했다.

◆ 여전히 허점 많아=금감원은 이번 개선안이 주식 보유 목적을 명확히 밝혀 허위공시를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종목의 지분을 5% 이상 사들인 뒤 보고를 지연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미국계 얼라이언스캐피털은 지난해 8월 신한금융지주의 지분을 5% 넘게 사들인 뒤 보고시한을 1년 정도 넘긴 올 8월에야 지분 취득 사실을 보고한 예가 있다.

허위공시에 대한 약한 처벌도 문제로 남는다. 현행 제도로는 공시의무를 위반하면 6개월간 보유지분의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처분명령을 내린다.

금감원 관계자는 "선진국에선 공시위반에 따른 제재가 약해 우리나라만 제재 수준을 강화할 수 없다"며 "이번 개선안처럼 공시 방법을 명확히 함으로써 사전에 허위 공시를 차단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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