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중 외교 전문가 인터뷰] 1. 마커스 놀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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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남북관계가 분단 반세기 만에 근본적인 변화를 보임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중국.일본 등 세 강대국의 전략도 크게 수정되고 있다.

주변 강국들의 움직임은 싫든 좋든 향후 남북관계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중앙일보는 창간 35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해빙 및 주변국들의 전략변화에 대해 미국.일본.중국의 외교 전문가들과 연속 인터뷰를 가졌다.

- 미국은 선거를 앞두고 있다. 공화당이 집권하면 한반도 정책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외교정책은 레토릭(rhetoric.修辭)과 현실을 잘 구분해야 한다. 어느 당이 집권하건 미국은 북한에 대해 외교적 한계를 갖고 있다.

미국의 가장 좋은 선택은 김정일 정권을 제거(eliminate)하고 한반도를 자본주의 민주국가로 통일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과 일본에 있는 미국의 군대와 민간인에 대한 북한의 직접적 위협이 없어진다.

북한이 대량 파괴무기와 미사일 등을 다른 나라들에 수출해 생기는 문제들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김정일 정권을 제거하려면 지역의 다른 나라들의 협력을 얻어야 되는데 그런 일은 벌어질 것 같지 않다.

*** 共和도 같은 외교적 한계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간의 차이가 있고 공화당은 클린턴 행정부를 심하게 비판해왔다. 하지만 공화당이 집권하면 그들도 똑같은 외교적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레토릭은 달라지겠지만 정책에는 상당한 지속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 "

- 남북화해는 주한 미군의 필요성에 관한 논란을 불러올텐데.

"주한미군에 관한 김정일의 언급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미국내에 상당히 많다. 북한은 주한 미군의 존재를 단순히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주한 미군이 한국군과 군사적 동맹관계를 맺는 대신 평화유지군 같은 좀 더 중립적인 존재로 바뀌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의 발전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

- 남북 정상회담과 이후의 남북 교류는 주변국에도 중요한 사태변화일 것이다. 그들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

"주변 국가들이 한반도 통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러시아.중국.일본 3국은 한반도가 분단된 상태로 있는 것을 가장 바랄 것이다.

그들은 남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한이 충분히 길들여져 북한의 호전성이 동북아시아의 정치.전략적 관계를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분단이 이익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국경지대에 동맹관계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이 존재해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무모한 행동으로 손해도 많이 봤다. 예를 들어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미국은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를 추진하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중국은 김정일 정권이 지속되기를 바라긴 하지만 그들이 잘못 행동하기를 원치는 않을 것이다.

일본도 한반도 분단을 원하지만 역시 북한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우려한다. 북한 보트피플이 일본으로 마구 몰려와 일본의 국내안정이 위협받는 사태같은 것을 두려워 한다.

일본이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일 것이다. 일본은 북한에 경제적 원조를 제공해서 북한이 (보트피플이 생기는) 파산상태로 가지 않도록 하는 임시 변통책을 쓰려고 할 것이다. "

- 러시아의 입장은.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서 외교적으로 밀려나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외교게임에 다시 들어오고 싶어 한다. 러시아가 북한을 부추겨 미국과의 관계에서 북한이 더욱 독불장군으로 행동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외 문제를 고려할 때 러시아는 서방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을 부추기기보다는 자신들이 북한에 경제지원 같은 걸 해줄 수 있다는 신뢰를 북한으로부터 얻어내는 게 오히려 러시아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

-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남한과의 각종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평가하고 전망하나.

"교류의 종류는 세가지다. 첫째는 이산가족 상봉같은 비교적 간단한 인도주의적인 것이고 둘째는 경제협력이다. 세째는 정치.군사적 교류다. 현재는 첫째 단계에서 진전을 이루고 둘째 과제를 막 시작하려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경제협력 부문에서 진정한 진전을 이루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남북한 정부 모두가 교류의 과정에서 자유 기업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시장경제의 주체들이다.

북한 정부로서는 기업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남한은 자유경제 체제다. (남한)정부는 기업들에 특정한 사업을 하도록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유혹이 있겠지만 이는 위험하다. 이런 것들이 경제협력의 문제들이다. "

*** 北, 中강국 외교 늘릴 것

- 북한 지도부는 남한 등 외부세계와의 접촉을 늘리면 더 많은 '자유의 바람' 이 유입돼 북한 체제의 안정이 위협받을 것이란 우려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어떤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보나.

"개방이 진행되면 북한 국민들이 남한이나 다른 세계와 비교하면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고 깊은 사회.심리적 방황과 가치상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이 점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지도부는 사회.정치적 변화는 최소화하면서 경제 개선을 최대화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 전략의 하나는 외국의 원조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북한이 호주와 같은 중(中)강국과 외교관계를 맺으려는 동기 중 하나는 원조를 늘리고 원조국을 다양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북한은 현 상황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경제의 기능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사회 간접자본을 개선하기 위해 남한이나 다른 나라를 활용하려 할 것이다. "

- 장기적으로 북한은 어떠한 형태로 변할까.

"가장 바람직한 사나리오는 북한이 경제개혁을 채택하고 그 과실을 국민의 절박한 물질 수요를 충당하는 데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이 국제사회의 건설적인 회원국이 되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사태전개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가치는 받아들이지 않고 경제개혁의 기술만 습득해 과실을 이웃국가에 더욱 곤경을 안겨주는 방향으로 쓰는 것이다.

*** 北경제 변형 아닌 조정

실제 북한의 행동은 그 중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남한.일본.중국,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가운데 환경변화에 따라 정책을 바꾸긴 하겠지만 그렇게 정교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 북한이 경제시스템을 바꾸는 데 있어 중국의 모델을 따를 것이라고 보는가 .

"북한이 여전히 그들의 경제체제를 '변형(transform)보다는 조정(adjust)' 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변화가 있기는 하다.

북한이 원래 제시했던 곳보다 북한 중심부에서 가까운 개성에다 현대의 공단을 짓도록 허락한 것은 좋은 징조다. 전체적으로는 북한이 개혁의 방향으로 움직이고는 있지만 아직도 주저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은 같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지만 두 나라는 차이가 있다. 1970년대 후반 경제 개혁을 시작할 때 중국 노동력의 70% 이상은 농업부문에 있었다.

이 노동력의 동원이 중국 성공의 핵심 요소다. 하지만 북한은 훨씬 더 산업화됐고 농업부문 노동력 비중은 중국의 반밖에 안된다. 따라서 북한의 개혁에는 국영기업체의 구조조정같은 문제가 더 핵심적인 것이다. "

정리=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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