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칼럼] 왜 유학을 가느냐 묻거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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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프랑스에서 여러 차례 한국 친구들의 석사나 박사학위 논문 교정 작업을 도와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마다 논문 작업 내내 그들이 겪어야 했던 여러 문제점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고 하나같이 같은 불만을 토로한다는 데에 적잖이 놀랐었다.

9년 간 한국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프랑스와는 다른 한국의 교육방식을 목격하고서야 나는 내 한국 유학생 친구들이 부딪혀야만 했던 그 어려움의 이유를 잘 이해하게 됐다.

나는 프랑스에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정치학이건 한국학이건, 그 전공에 관계없이 방법론 수업부터 들어야 했다.

프랑스 교육은 아주 일찍부터 방법론적 측면을 중요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먼저 짧은 글짓기를 하는 방법을 배우고 중학교에선 주제를 잡아 긴 작문을 하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한 소 논문이나 논술을 작성하게 된다.

물론 대학입학 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도 논술시험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 반해 한국의 교육은 학생의 적극적 참여가 별로 없이 단순 암기교육과 객관식 시험에만 너무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 교사는 지식 전달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으로 하여금 선생님의 발언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이의를 제기하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담당한다.

어쩌면 이러한 학생의 적극성을 유도하는 정책이 너무 과해 교사에 대한 존경심 부족, 학교 내에서의 폭력 등의 여러 문제가 야기됐는지도 모른다. 또한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암기교육을 너무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교육제도도 흠 하나 없이 완벽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교육부장관이 경질될 때마다 새로운 교육 개혁안이 채택되고 있으며 이는 이전 교육 제도에 항상 문제가 있어 왔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국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절감하는 것은 교육제도가 두 체계로 즉, 학교와 학원으로 나뉘어 병행돼 왔다는 점이다.

아주 어려서부터 많은 아이들이 방과 후에 자신의 '학업 완수' 를 위해 다시 학원으로 간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점점 더 늦게 집에 돌아오는 자녀의 모습에 기뻐할 학부모들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자녀에게 좀더 화려한 미래를 보장해주기 위해, 다시 말하자면 이름 있는 'SKY 대' 에 입학시키기 위해 한국 학부모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물론 요즘 들어 열린 교육이니 전문가 양성교육이니 하면서 교육개편이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지 않는 것' 과 '실패' 가 동의어로 간주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국의 이러한 교육제도는 점점 더 많은 수의 학생이 그들의 학업을 마치기 위해 외국 유학을 떠나는 또 다른 사회현상을 야기했다.

무엇이 그렇게나 많은 학생이 북미로 혹은 유럽으로 떠나도록 하는 것일까? 그것이 이 나라의 대학에 문제가 있어서일까? 게다가 요즘에는 대학기관이 아닌, 중등교육을 위해 점점 더 많은 청소년들이 유학을 떠나고 있다.

그렇게나 한국 교육이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일까□ 한국에서 교육받는 것, 그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나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너무나 선별적인 엘리트 위주의 제도로 보고 있다. 점수가 높은 학생 순으로 선발해 대학 자체가 서열화돼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학 교육을 위해선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 대학입학 제도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선별적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대학이 설립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대학 졸업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외국 대학 졸업장을 취득하는 것이 그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외국 학위가 과연 높은 교육 이수의 보증서일 수 있을까?

대학에서 학생들은 졸업 이후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경로가 마련돼야 한다.

이제 한국은 일반 대학 외에 좀더 실질적인 지식과 기술교육을 제공하는 새로운 방향의 고등 교육기관이 절실히 필요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필립 르보르뉴 <이화여대 교수.불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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