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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없는 복이란 화가 될 수도 있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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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습니다. 지금이야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그렇게 설렘과 기쁨으로 자리하지 않지만 그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새해는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었습니다. 이유는 조금이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 그날만큼은 마음껏 놀고 좋은 옷과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같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뭐니 뭐니 해도 세뱃돈에 대한 기대를 떨쳐 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젯밥에 관심이 많은 탓이었겠지만 그래도 어린 마음에 웃어른을 찾아뵙는 마음이 그렇게 가벼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림=김회룡 기자

그때는 새해 인사가 대부분 ‘복 많이 받으세요’나 ‘건강하세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배를 드린 다음에는 당연히 덕담(德談)이 따르고는 했는데 ‘공부 열심히 하라’거나 ‘어른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돼라’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덕담이란 사전적 의미로 “새해를 맞이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앞으로 잘되기를 축복하는 말”이지만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사전적 의미보다는 선인(先人)들의 지혜가 느껴져 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늘 덕(德)보다는 복(福)에 관심이 많습니다. 덕은 노력해 얻어야 하는 것이고, 복이란 따지고 보면 우연을 가장해 주어지는 행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새해 첫날부터 복 많이 받는 것에는 관심이 많아도 덕 쌓는 일에는 조금 더딘 것이 사실입니다. 분명 덕 있는 사람을 존경하기는 해도 스스로 덕 있는 사람이 되려고는 하지 않는 게으른(?)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자리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자칫 노력해 얻어야 할 것들을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 하는 못된 습성을 간직할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덕담을 해 줬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덕담은 복에만 의지한 삶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선인들의 지혜입니다. 인생이란 복 많이 받은 사람이 성공하고 잘되는 것이 아니라 길게 봐서 덕 많은 사람이 잘되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덕 없는 복이란 때로는 화(禍)가 될 수 있음을 심심치 않게 확인하게 되는 것도 세상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간혹 로또나 복권에 당첨됐지만 그 끝이 좋지 않았던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삶이란 적당한 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덕입니다. 덕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한번 생기면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고 살면 살수록 삶을 윤택하게 하고 넉넉하게 하는 힘입니다. 흔히들 복만 많이 받으려 하지만 그 옛날 선인들의 지혜는 복에만 의지하는 삶의 얕음을 덕으로 채우라는 의미에서 덕담을 주고받았습니다.

필자가 처음 신앙 생활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어떤 강력한 힘이 지금의 현실로부터 나를 구원해 주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찾은 신앙이지만 어쩐지 차가운 현실을 바꿔 주기보다는 단지 작은 촛불 하나를 밝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젊은 날 신앙은 연약하고 나약하며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을 따뜻하게 하지도 못하는 그 촛불을 왜 밝혀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외롭고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한 신앙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촛불은 세상을 향해 밝혀진 것이 아니라 제 마음속에 켜진 것이었습니다. 반딧불이 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이유가 자기 안에 빛을 간직했기 때문이듯, 이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없지만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다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간직하게 했고 그 마음이 조금이나마 세상에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여전히 우연을 가장한 복을 좋아합니다. 어느 현자의 말처럼 “우연이란 익명으로 남고 싶은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 보면 나쁠 것도 없지만 불행히도 우연을 의도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때로는 우연조차 필연이 만들어 가는 하나의 행운이고 돌연변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학습 효과가 선인들로 하여금 복에만 의지하려는 얕은 마음에 덕이라는 무게중심 추를 달아 놓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상 덕 없이 힘만 있는 사람은 그 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그 힘이 다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비난을 하거나 발걸음을 되돌리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봐 왔습니다. 삶이란 분명 얕음을 벗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얕음에 깊이를 더하지 않으면 매일 뜨는 해가 누구에게나 찬란한 것이 아니듯 그렇게 밝은 날을 기약할 수 없는 법입니다.

호랑이는 아무리 작은 동물을 사냥해도 최선을 다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티끌 같은 노력으로 태산과 같은 보상을 바라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태산과 같은 불평불만”(이외수, 『청춘불패』 중)만 쌓는다는 소설가의 말처럼 자신의 노력은 극도로 아끼면서도 자신이 받아야 할 보상에는 턱없이 많은 기대를 합니다. 그 어리석음만큼 어리석은 삶을 살아왔던 것이 우리이기도 했습니다. 해서 아무리 작은 짐승을 사냥할 때라도 온 힘을 다하는 호랑이처럼 올 한 해는 그렇게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었으면 합니다. 복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그곳에 깃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철호 삼각지 성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