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 고위직 오른 권율, 하워드 고, 데이비드 김 한목소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소비자행정국의 권율 부국장과 미 보건부의 하워드 고(한국명 고경주) 차관보, 그리고 미 교통부의 데이비드 김 부차관보가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의 한국경제 연구기관인 워싱턴 소재 한미경제연구소(KEI·소장 잭 프리처드)가 13일(현지시간) 워싱턴 윌러드 호텔에서 마련한 ‘미주 한인의날’ 기념행사에서다. 이들은 연설에서 성장 과정과 미 고위 공직에 오른 소감을 밝혔다.

스탠퍼드대와 예일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권율 부국장은 2006년 12월 CBS 방송의 리얼리티 쇼 ‘서바이벌’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으론 처음으로 우승했다.

권 부국장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동기에 대해 “미국에 사는 아시아인, 한국인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미국 미디어에 나오는 아시아계 여성은 단순하고 순종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 아시아계 남성은 쿵푸에 열중하거나 아니면 공부 벌레고 영어는 잘하지 못하는 사람 정도로 고정관념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도 어려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 교수나 변호사가 돼야 한다고 들었고, 배우가 되는 것은 공부 안하고 퇴학 맞은 학생들이나 하는 것인 줄 알았다”며 “그래서 열심히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서바이벌에서 우승한 뒤 유명인이 되고 방송 인터뷰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한국계’라고 했더니 남한 출신이냐 북한 출신이냐고 묻더라”며 “아주 유명한 앵커였는데도 한국에 대해선 너무 모르더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정부 고위직이나 정계로 진출해 아시아계의 영향력을 키우고 목소리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차관보는 “허버트 험프리 전 상원의원은 아버지의 친구로, 어렸을 때 자주 만났다. 그런데 험프리 전 상원의원의 이름을 딴 험프리 빌딩(보건부 청사)으로 매일 출근해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또 “험프리 빌딩 로비엔 그의 초상화와 함께 ‘정부 도덕성은 노약자와 가난하고 병들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의해 시험받는다’는 험프리 전 의원의 글이 걸려 있다”며 “늘 가슴에 되새기고 있다”고 했다. 고 차관보의 부친(고광림)은 경성제대를 졸업한 뒤 한국인 최초로 하버드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장면 정권 시절엔 초대 주미 전권공사를 맡았다. 5·16 군사정변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고 하버드대 강단에 섰다.

데이비드 김 교통부 부차관보는 “정신과 의사였던 아버지와 고교교사였던 어머니의 사회봉사 활동이 진로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소개했다.

그는 “1970년대 1.5세 재미교포인 이철수씨가 갱단원을 살해해 종신형을 받자 그를 구하기 위한 ‘이철수 구명위원회’가 우리 집 응접실에서 열렸다”며 “당시 많은 사람이 찾아와 다른 사람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던 모습이 가슴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자리에 오른 것은 개인적 성취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도움에 의한 공동의 성취”라고 표현했다. 또 “젊은 세대는 갈 길이 더 남아 있다. 한인들이 더 높은 정부 요직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조연설자인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세 사람의 연설을 들은 뒤 “내가 외교관을 시작할 때만 해도 동부 명문대 출신의 백인 남성만이 국무부를 가득 메웠다”며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계는 아시아계 이민자들 중 미국 사회에서 가장 성공을 거뒀다. 이젠 한인들이 적극적인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자인 잭 프리처드 KEI 소장은 “오바마 정부에서 고위직에 오른 세 사람이 한국계 미국인의 성공 사례라고 판단돼 연설을 부탁했지만 성공담을 듣고 보니 미국인이 본받아야 할 미국인의 성공사례”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최상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