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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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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대교에는 식사와 관련해 카쉬룻(Kashrut)이란 율법이 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코셔(Kosher), 그렇지 못한 것은 트라이프(Traif)다.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는 성경(창세기 1장 29절)에 근거해 코셔다. 어류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 하고, 육류는 되새김질을 하며 발굽이 갈라져야 한다(레위기 11장 2~23절). 그래서 소·양·염소·사슴은 먹기에 ‘합당’하다. 말과 낙타는 되새김은 하지만 발굽이 갈라지지 않아서, 돼지는 발굽이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아서 ‘부정한 음식’이다.

발굽은 발가락 끝의 발톱이 넓적하고 단단하게 발달한 형태다. 대부분의 초식동물로, 포식자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진화한 것이다. 발굽동물은 대부분 뿔도 가졌다. 각자무치(角者無齒)다. 뿔이 있으면 날카로운 이빨이 없는 법. ‘모가지가 길어 슬픈’ 사슴은 어쩌면 뿔이 슬프고, 발굽이 서럽다.

설상가상으로 발굽이 있어 서러운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구제역(口蹄疫)이다. 초동 대처가 잘 안 돼 경기도 포천에서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입과 발굽에 물집이 생기는 병으로, 치사율이 최고 55%에 이른다. 전국의 축산 농가가 한파 속 냉가슴이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A, O, C, Asia-1의 유라시아형과 SAT-1, 2, 3의 남아프리카형으로 구분된다. 형태도 7종이나 되고 변종도 잘 생겨 근절이 어렵다. 지난해에 모두 25개국에서 발생했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A형이다. 중국은 2005년부터 매년 발생하는데, 지난해 양쯔강 하류 2곳의 구제역 바이러스가 A형이다. 전염경로는 감염된 유제품이나 육류가 66%, 바람이나 철새가 22%다. 전국에 구제역이 창궐한 2000년 당시 황사를 ‘운반자’로 지목했었다.

인수(人獸)공통전염병이 아니어서 사람에겐 전염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섭씨 76도에서 7초만 가열해도 바이러스가 사멸해 조리하거나 살균한 유제품은 안전하다고 한다. 인간 구제역 의심 사례는 1966년 영국에서 보고됐다. 보비 브루이스라는 농기계 판매원인데, 구제역에 걸린 젖소에서 짠 우유를 마시고 5개월가량 앓았다고 당시 더 타임스가 보도했다.

우리나라는 세계동물보건기구(OIE)로부터 2002년 11월 29일 ‘구제역 청정국’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번 구제역으로 당분간 축산물 수출이 올스톱될 상황이다. 조속히 구제역이 소탕돼 다시 ‘청정국’으로 인정받길 기대한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