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올림픽 2000] 남북 동시입장 뒷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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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북 선수단 동시 입장은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과 김운용 IOC 위원.장웅 북한 IOC 위원의 합작품이었다.

지난 8, 9일 낮 두차례 회동했던 세사람은 9일 밤 오페라 하우스가 바라보이는 시드니 리젠시호텔에서 세번째 만나 동시 입장에 합의했다.

그리고 10일 오후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사마란치 위원장은 "기쁜 소식이 있다" 며 남북한 동시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이들은 8일 첫 만남에서 사실상 합의를 이뤄낸 뒤 보안을 유지하면서 남은 실무를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수십차례 회담을 갖고도 제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진 남북 관계를 새삼 실감케 하는 장면이었다.

○…북한측이 가장 난색을 표명했던 부분은 남북 선수단의 규모 차이였다.

3백98명에 달하는 한국에 비해 60여명에 불과한 북한선수단이 함께 입장하면 너무 초라해 보인다는 이유였다.

북한측은 "남북이 50명씩 1백명이 입장하자" 고 제의했다. 이에 대해 김운용 위원은 "1백명은 너무 초라하다. 최소 2백명 수준은 돼야 한다" 고 요구했다.

결국 양측은 90명씩 입장하는 것으로 공식 발표하되, 북측은 선수외에 물리치료사 등 보조 임원도 같이 입장하는 것으로 낙착됐다.

실제 입장 인원은 남측 1백30명, 북측 50명선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올림픽기를 앞세우고 입장하자는 사마란치의 제의도 북한측이 반대하고 나섰다. 이 문제는 '한반도기' 로 해결됐다.

입장식 기수 선정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당초 한국선수단 기수는 2m 장신인 김세진(배구)이었으나 북측에는 김세진의 키에 어울리는 여자 선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녀북남' 으로 즉석에서 바꿨다. 정은순(남).박정철(북)카드가 결정된 것이다.

○…시드니에서 급박하게 사태가 진전되는 동안 서울에서는 선수단복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8일 선수단과 함께 출국하려던 김봉섭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은 시드니의 김운용 위원으로부터 '다크 블루' 라는 긴급 연락을 받았다.

이는 남북 동시 입장이 성사됐음을 알리는 암호인 동시에 선수단복 색깔이기도 했다.

김총장은 체육회에 비상을 걸었다. 바지.스커트를 구하기 위해 체육회 직원들이 백화점을 뒤졌다. 상의는 공식 후원업체인 코오롱에 급히 발주했다.

옷을 맞출 시간이 없어 기성복을 사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대충 사이즈를 대.중.소로 구분해 긴급 공수했다.

이 선수단복은 11일 시드니에 도착한 핸드볼팀이 실어 날랐다.

○…선수단복 구입 비용은 IOC가 부담키로 했다.

김운용 위원은 합의 발표 후 "IOC로부터 3만달러를 지원받아 선수단복을 구입하는 것" 이라며 "최악의 경우 개인적으로 비용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고 밝혔다.

북한의 장위원은 발표 후 "동시 입장은 사실 오래 전에 결정된 것" 이라고 말했다.

6.15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시드니 올림픽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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