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빗나간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9면

제12보(129~139)=중앙에서 옥쇄 전법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오판이었다. ‘패착’이란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속단할 수 있을까. 딩웨이 9단은 나름의 ‘계산’이 있었고 백△ 두 점을 버려도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백◎는 준 선수. 중앙 맛이 너무 나빠 어딘가 받아야 한다. 평범하게 둔다면 ‘참고도’ 흑1인데 백은 2부터 끝내기를 해치운다. 이 그림은 죽었다 깨어나도 덤은 안 나온다. 딩웨이의 포기 전법도 나름의 비전이 있었고 그렇게 비난만 받을 내용은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뻔한 길을 이창호 9단이 갈 리가 없다는 점이다. 그는 백◎를 모른 척하고 129 쪽으로 공격했다. 132까지 백은 연결에 성공했지만 그사이 흑은 135까지 선수로 두텁게 하여 중앙의 엷음을 간접 보강했다. 그러고는 선수를 잡아 137, 이곳을 차지하자 상황이 뒤집혔다. 백이 아무리 쫓아가도 조금은 지는 그런 바둑이 되고 만 것이다(137은 역끝내기 7집으로 14집 가치가 있다).

허를 찔린 딩웨이의 표정에 희미한 미소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잘못된 스토리를 쓴 것에 대한 자조일까. 138로 우지끈 끊었다. 139에서 백A는 흑B로 수가 안 된다. 그러나 뭔가 수를 내 작은 이득이라도 얻지 못하면 진다는 강박관념에 딩웨이가 사나워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