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고전 투시경] 이런 정국 맹자도 웃겠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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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옛적에 시장(市場)이란 것은 자기가 가진 것을 자기에게 없는 것과 바꾸는 장소였고, 관리는 다만 그것을 다스릴 뿐이었다.

그런데 한 천한 사나이(천장부.賤丈夫)가 있어 반드시 높은 언덕(농단.壟斷)을 찾아 올라가 이리저리 살피며 시장의 이익을 모조리 차지했다.

사람들이 모두 그런 짓을 천하게 여겼기 때문에 세금을 거두게 되었으니, 장사치에게서 세금을 거두게 된 것은 실로 이 천한 사나이로부터 비롯된 일이다."

여기서 '이리저리 살펴 시장의 이익을 모조리 차지했다(以左右望而罔市利)' 는 것은 높은 곳에서 살펴보다가 사람이 많이 모인 곳, 혹은 이익이 날만한 곳이면 어디든 덤벼들어 사고팔아 이익을 챙겼다는 뜻일 것이다.

뒷날 '농단하다' 는 말의 전거(典據)가 된 구절로 맹자 공손추(公孫丑)편에 보인다.

이 구절이 새삼스러운 것은 요즘 들어 천하게 권력을 농단하는 사례가 너무 자주 언론에 보도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빛은행 대출부정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그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 한다. 경제 각료나 금융감독원의 요인(要人)이 그 대출 부정에 개입했다면 이는 그래도 자기가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을 주고받는 범위에 속한다.

그런데 청와대 공보수석실의 행정관과 금융기관, 그리고 특단사항의 수사를 위해 구성되었다는 속칭 '사직동' 팀이 얽히고 설켜 주고받는 관계라면 이는 농단으로밖에 이해할 길이 없다.

이 사건의 보다 고위층 배후 의혹에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이 있다. 논란이 있지만 야당 주장대로 이번 대출부정사건에서 금융기관에 압력을 넣은 게 사실이라면 이는 어김없는 농단이 된다. 朴장관은 그런 의혹에 억울해한다.

지난 시절 권위주의 정권이 비난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농단에 대해 제때 세금을 거두지 않은 일이었다.

감당 못할 세금을 먹여 그 천한 사내를 언덕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대신 쉬쉬하며 그 일을 덮고 감추려다 정권 자체가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대개는 정실(情實)주의 인사의 폐해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 정권도 같은 이유로 머뭇거리고 있다면 그때는 이사(李斯)의 '상진황축객서(上秦皇逐客書)' 를 권하고 싶다.

'상진황축객서' 는 시황제 시절 진(秦)나라 출신 관리들이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 벼슬 사는 객경(客卿)들을 모두 내쫓아야 한다는 논의를 일으켰을 때 그에 반대해 이사가 올린 상주문이다.

이사는 먼저 목공(穆公)때부터 소왕(昭王)에 이르기까지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으나 진나라 출신은 아닌 인재들을 열거한다.

그리고 다시 시황제가 애호하는 진나라산(産)이 아닌 보배와 명마(名馬), 미인, 음악을 열거한 뒤에 충고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인재를 취하는 것은 가부(可否)와 곡직(曲直)을 묻지 않고 진나라 사람이 아닌 이는 물리치며 객(客)이 된 이는 내쫓으니, 그렇다면 무겁게 여기는 것은 색(色)과 음악과 주옥(珠玉)이고 가벼이 여기는 것은 사람이 됩니다.

이는 결코 천하를 차지하고 제후를 다스릴 방도가 아닙니다…. 무릇 물건이 진나라에서 나지 않더라도 보물로 여길 만한 것이 많고 선비가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충성하기를 원하는 이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선비를 내쫓아 적국에 보탬이 되게 하고, 그런 백성을 버려 원수의 나라에 이익이 되게 한다면 안으로는 스스로를 비게 하고 밖으로는 제후들에게 원망을 심는 것이니 나라가 위태로움이 없기를 바라나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라가 다르고 시대가 다르며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기는 하나, 이 정권의 핵심도 이제쯤은 한번 읽고 음미해볼만한 명문(名文)이다.

이문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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