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북, 회담 제의 왜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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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1일 평화협정 회담을 제의한 북한 외무성 성명 내용은 심리전술적 색채가 강하다는 게 당국자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사회의 비핵화 압박을 평화협정 카드로 맞받아쳐 희석시키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북한 성명은 평화협정 회담이 6자회담과는 별도로, 또는 6자회담 테두리 내에서 진행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6자회담에 앞서 국제사회의 대북불신 해소를 요구해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가 회담 재개의 조건임을 강조했다. 6자회담보다는 평화협정 논의에 방점이 가 있는 셈이다. 북한을 제외한 관계국은 6자회담의 비핵화 프로세스가 재개되면 평화협정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북한의 제의는 나머지 5개국의 공조를 흔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제의하면서 ‘당사국’을 명기하지 않은 점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당사국 선정을 하나의 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다. 평화협정 논의가 개시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는 늦어지고, 북한은 핵보유국의 입지를 굳힐 수 있다.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제의는 이미 1일 노동신문 등 3개지 신년 공동사설에서 예고됐다. 올해 대외정책의 축으로 삼겠다는 신호탄이었다. 북한은 외무성 ‘성명’ 형태로 회담을 제의하고, 그것이 ‘위임에 따라’라고 밝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이 반영된 제안임을 강조했다. 이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올 5월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 회의를 앞둔 시점에서 평화협정 문제와 6자회담을 거론한 점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북한의 성명은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평화체제 논의’로 벗어나려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지난해 5월 핵실험으로 유엔 안보리 제재가 숨통을 조이자 탈출구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대남 유화 제스처도 평화체제 제의를 염두에 둔 것이란 지적도 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평화협정을 주장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대남 평화 공세는 전술적 측면이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앞으로 대북 제재 완화 등을 6자회담 복귀의 명분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지난해 4월 유엔의 대북 제재에 반발해 ‘복귀 불가’를 선언했던 6자회담에 돌아오는 수순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제기한다.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를 우선하는 한·미·일과 평화협정 우선 체결을 주장하는 북한과의 입장 차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영종 기자

◆정전협정과 평화협정=미국·중국·북한이 1953년 7월 27일 서명한 ‘한국 정전협정’은 6·25전쟁에서 교전한 국군·유엔군과 북한군·중공군 쌍방끼리 적대 행위를 중지하는 성격의 잠정 협정이다. 당시 한국은 정전협정이 남북 간 분단을 고착시키는 행위라고 판단해 서명하지 않았지만 엄연한 정전협정 당사자다.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에 의해 중단된 전쟁을 법적으로 완전히 종결하는 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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