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부시와 케리의 북핵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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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 대통령선거의 종반 판세는 세 번에 걸친 TV토론에 달려 있다. 1차 토론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는 케리 후보가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케리의 선전이 실제 표의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부시의 승리로 굳어지던 선거 정세가 다시 접전의 양상으로 바뀌는 효과는 보았다고 판단된다.

종래의 미 대선과는 다르게, 외교안보 분야가 1차 TV토론의 의제가 된 것은 현재 미국 내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번 선거가 전시(戰時) 선거라는 점을 말해준다. 전쟁 중인 나라 미국의 대선에서 가장 신경쓰이는 대목은 이라크문제와 함께 북핵문제가 크게 쟁점화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의 선거만큼이나 이번 선거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3600명이나 파병한 우리로서는 차기 정부의 이라크 해법에 영향을 받을 것이며, 북핵 정책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케리 후보는 이라크 전쟁은 전적으로 잘못된 결정이며 그 결과 부시 정권이 미국의 안보에 훨씬 중요한 북한의 핵무장을 방치했다는 논지로 시종일관 부시 대통령의 외교적 실패를 공격했다. 북핵문제의 해법에서 두 후보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다. 케리는 부시 정권이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은 결과 '북한이 핵무기를 4~7개 보유하게 돼 세계는 훨씬 위험해졌다'고 주장하고 북.미 직접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추진할 것임을 강조한 반면, 부시 후보는 6자회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갈 것임을 재확인했다. 북핵 해법에 있어 선명한 차이만큼이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두 후보 모두 핵무기 확산이 미국의 최대 위협이고 그 중심적 과제가 북핵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케리 후보는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선제공격권을 강조했으며 최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선 외교가 실패할 경우 대북 선제공격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핵문제에 관한 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입장차이가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누가 당선되든 북핵문제는 최우선 과제가 될 전망이다.

부시가 재선될 경우, 일단 6자회담을 통해 해결을 꾀하지만 내년 상반기까지도 진전을 보지 못할 경우 유엔안보리 상정, 경제 봉쇄 등 다차원적인 대북 압박으로 중점이 옮겨갈 것이다. 케리가 당선된다면 일단 외교안보팀의 인선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내년 중반기 이후 북한과의 양자 대화를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북핵을 최대 위협으로 공언한 케리 입장에서 이미 2년 이상 끌고 있는 대화만을 연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네바 합의의 실패를 경험한 민주당 정권은 동일한 실패를 되풀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대화의 틀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본질에는 큰 차이가 없다. 북한이 초기단계에서 확실한 핵 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지 간에 미국의 정책은 결국 동일한 내용이 될 것이다.

우리는 매우 중대한 시점에 서 있다. 대화의 틀 외에 차별성이 없다는 점이 드러난 만큼 대선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혹자는 전쟁을 막기 위해 민족공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전과 반핵은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핵을 방치한 채 반전만 한다면 결과는 파국이다. 반핵을 해야만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2기 부시정부든 케리 신정부든 새로운 외교안보팀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긴밀한 대화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한.미 공조만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임을 직시하자. 그리고 북한에 모든 채널을 동원하고 특사를 보내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촉구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4차 6자회담이 지체 없이 열리는 것이 중요하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