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8개 기관과 교육 협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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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대 평생교육원에서 학점은행제를 통해 대학과정을 수강 중인 진순덕김태형씨가 한상수 교수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오른쪽부터).

마치지 못한 학업에 미련이 남은 직장인들이 많다. 공부를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도 선뜻 용기가 나질 않는다. 독학을 해볼까 방송통신대학에 다녀볼까 이곳 저곳 기웃거려보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하기가 부지기수다.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게 그 이유다. 속내를 털어놓자면 ‘먹고 살기 바빠서’다.

이들을 위해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과 지역 자치단체가 함께 나섰다. 호서대는 2008년부터 천안·아산지역 8개 기관과 학점은행제 교육협약을 맺었다. 대학에서는 시간활용과 저렴한 학비로 교육기회를 제공한다. 협약체결 이후 호서대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직장인은 70여 명. 이들은 때늦게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1 천안교육청 시설과에 근무하는 김태형(38)씨는 공부를 중간에 그만둔 것이 항상 아쉬웠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학사 학위가 없는 게 발목을 잡았다. 김씨는 “공무원시험에 붙고 나서 대학을 그냥 중퇴했던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러다 김씨의 직장이 호서대 평생교육원과 교육협약을 맺었다는 공문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었다.

2009년 초 공부를 다시 시작한 김씨는 6개월 만에 전기공학 학사 학위 취득을 마쳤다. 예전에 중퇴한 대학에서 받았던 학점과 자격증(전기공사기사) 덕분이었다. 남아도는 학점과 국가공인자격증을 새로운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학점은행제를 톡톡히 활용했다.

처음엔 일하면서 대학을 다닌다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일주일에 두 번, 일이 끝난 후 저녁에 시간을 냈다. 회식자리를 줄이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주말엔 사이버 강의를 들으며 틈틈이 공부했다. 까다로운 학사 규정에 매인 일반대학과는 달리 자신의 시간에 맞춰 공부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로 바쁜 김씨에게 ‘딱’이었다.

1주일에 한 번씩 들었던 배드민턴 강의는 바쁜 일상에 치여 운동이 부족했던 건강을 챙겨줬다. 그는 “학교에 가서 땀을 흘리고 나면 항상 개운했다”고 말했다. 스포츠마사지 강의를 듣고 나선 스포츠마사지사 자격증까지 땄다. 피곤해하는 아내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생색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난해 8월 졸업한 김씨는 대학원에 진학해 원하던 공부를 더 할 수 있게 됐다. 일하면서 동시에 평생 공부를 하고 싶다는 김씨의 오랜 바람이 이뤄진 것이다.

#2 천안시청 보건과 진순덕(58·여)씨는 요즘 부쩍 젊어졌다는 얘기를 듣는다. 환갑이 내일모레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은 소녀가 따로 없다. 호서대 평생교육원 사회복지학과에 다니고 있는 진씨는 예전 꿈 많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진씨는 대학생의 특권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 학생증을 발급받아 교내 각종 복지·편의시설을 대학생들과 똑같이 이용하고 있다. 체육대회와 MT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진씨는 “직장의 위계질서에만 익숙해져 있다가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학교에 오니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40년 만에 대학생이 된 기분이 아주 짜릿하다.

진씨가 젊었을 땐 여자가 고등학교를 마치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직장의 젊은 후배들이 대학을 나온 걸 보면서 공부 욕심이 더 났다. 얼마 남지 않은 정년 후 뭘 해야 할지도 고민이 됐다. 새로운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혼자 속앓이를 해온 게 오래였다.

호서대 평생교육원이 진씨의 직장인 천안시청과 교육협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용기를 줬다. 진씨는 “학점은행제는 나 같은 사람이 뒤늦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일부, 학교에서 일부 등록금을 부담해 경제적인 부담도 덜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진씨와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은 이제 모두 인생친구가 됐다. 동기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학교 밖에서도 만남을 갖고 있다. 얼마 전엔 송년모임도 했다. 진씨는 “동기들의 의욕과 열정이 대단해 배울 점이 많다”고 했다. 같은 길을 가는 동료가 있다는 생각에 항상 마음이 든든하다. “나만 보는 ‘거울’이 아닌 세상을 보는 ‘유리’가 되어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싶다”는 진씨는 정년퇴임 후 공부를 마치고 사회복지사로서 새 삶을 시작할 예정이다.

글·사진=고은이 인턴기자

◆학점은행제=고졸(예정자)학력이면 누구나 입학이 가능하다. 1학점 당 7만5000원의 수업료를 내고 원하는 만큼 수강신청을 할 수 있다. 전문학사는 80학점, 학사는 140점을 이수하면 정규대학과 똑같은 졸업장(학위)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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