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 정부기금 운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번 기금 평가는 1961년 기금제도 도입 이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운용 실태를 낱낱이 밝혔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기획예산처가 정부의 치부로 꼽혀온 기금에 메스를 들이댔다는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평가 결과는 그동안 기금운용을 둘러싸고 제기돼 왔던 의혹이나 문제점들이 대부분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해당 부처 장관의 승인만으로 운용되는 기타기금의 경우 국무회의 심의나 국회 보고도 거치지 않아 의문 투성이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실태가 드러났다.

기금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설립하기 때문에 한번 망가지면 기금을 없애지 않는 한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주게 된다.

실제로 공무원연금기금 등 상당수 기금들이 방만한 운용으로 재원이 거덜나자 세금을 투입하는 바람에 재정적자를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번 평가는 규모가 큰 26개 기금만 실사를 했으며, 나머지 36개는 서류만 살펴보는 데 그쳐 정확한 검증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 타당성 부족한 수익사업 운영=설립 목적에 맞지도 않고 수익성도 높지 않은 호텔.회관.휴양소.복지타운 등 부대사업을 운영해 재정손실을 초래하고 있는 기금들이 문제다.

사립학교 교원들의 돈으로 조성하는 사립학교 교원연금은 강원도 양양에 오색그린야드 호텔을 운영 중이나 매년 적자가 누적되고 있으며, 서울.대전 등 전국 7곳에 수익성도 없는 회관을 지어 놓고 있다.

또 기업주들의 부담금과 복권발행 등으로 꾸려가는 근로복지진흥기금은 부천.전주에 기금 성격에 맞지 않는 스포츠센터를 설치했으며, 군대 매점운영 수입금으로 조성한 군인복지기금은 서귀포 등 전국 7곳에 휴양소를 운영하고 있다.

◇ 자금 운용 부실=운용 수익률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금융기관 한 곳에 여유자금을 모두 맡기는 바람에 수익성과 안전성을 희생하고 있다.

축산물의 가격안정 등을 위해 수입업자에게 부과한 자금으로 설치한 축산발전기금은 지난해 여유자금 3천4백24억원 전액을 축협에 예치했다.

또 농수산물가격안정기금(2조6백84억원)과 종자기금(24억원)은 농협에, 정보화촉진기금은 우체국(7천9백22억원)에,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은 주택은행(6천3백32억원)에 각각 여유자금 전액을 맡겼다.

운용 기간을 중장기로 하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데도 상당수 기금들이 지나치게 많은 자금을 수익률이 낮은 단기로 맡기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는 기금 관리자들이 자산운용과 관련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운용규모가 15조2천억원에 달하는 우체국보험기금은 정보통신부의 한개 과에서 단 6명의 직원이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 수혜대상 중복=일부 기금들이 동일한 분야를 지원하고 있으나 기금간 업무조정이 되지 않아 대상자가 중복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중소기업 창업 및 진흥기금과 정보화촉진기금.산업기반기금 등은 한 사업자가 같은 목적으로 세 군데에 자금을 신청해도 이를 상호 체크하지 않아 이중 삼중으로 지원받을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다.

◇ 의사결정 투명성 부족=축산발전기금.대외경제협력기금.수출보험기금 등 많은 기금들은 운용 주체인 기금운용심의회가 서면 심의 위주로 형식적인 운용을 하고 있다.

특히 근로복지진흥기금은 노동연구원 소속위원을 제외하고는 심의회 위원이 모두 기금을 집행하는 근로복지공단 이사회 소속이어서 기획.감시 등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수익자 부담 원칙 미흡=기금사업의 경우 특정 계층에 지원하는 것인 만큼 재원조달에 수익자 부담을 강화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세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복권발행 등에 의존하는 기금이 많다.

과학기술진흥기금.근로복지진흥기금.국민주택기금.국민체육진흥기금.중소기업 창업 및 진흥기금 등은 대부분 복권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

복권의 구매층이 주로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국민의 복지향상과 소득 재분배라는 측면에서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계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