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감독 '봉자' 영화음악 만든 이상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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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간간이 음반을 내놓고 있는 이상은(30)이 오는 10월 개봉될 박철수 감독의 영화 '봉자' 의 음악을 만들었다며 슬그머니 나타났다.

영화음악이긴 하지만 그가 '외롭고 웃긴 가게' 를 선보인지 3년만에 국내에 내놓는 음반이어서 눈길을 끈다.

수록곡 12곡 모두 그가 만들었고 몇몇 연주곡과 황보령이 부른 한 곡을 제외하고 노래도 직접 불렀다. 따라서 솔로 앨범의 성격이 강하다.

그가 영화음악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 일본에서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제작하고 이소무라 가즈미치가 연출한 영화 '하이틴 에츠코' 의 음악을 맡았었다. 한국인이 일본 영화의 음악을 맡은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그는 영화 '봉자' 의 음악을 맡게된 동기를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데다,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소녀 '자두' 라는 캐릭터가 맘에 들어서였다" 라고 밝혔다.

그는 또 "영화음악은 음악에 대한 내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감독의 의도를 존중해야 하는 특성이 있지만 다양한 시도를 할 ?있어 도움이 된다" 고 덧붙였다.

담담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다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0대에 치열하게 느꼈음직한 분노나 좌절, 혹은 가수가 아닌 음악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안달했던 욕망에서 그는 많이 자유로워진 듯하다.

그 자신이 '특히 맘에 든다' 고 말한 첫 곡 '자두의 테마' 는 그런 개성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장구의 단아한 리듬과 어쿠스틱 기타소리를 조화시킨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자신이 직접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부른 트랙과 연주만을 들려주는 트랙이 선사하는 색다른 맛도 빠뜨릴 수 없다.

'브리프 앤드 클리어' (간략하고 깨끗한)라는 다른 삽입곡의 제목은 그의 음악적 개성이 지금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암시해준다. 대부분의 수록곡엔 최소한의 악기로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고집이 엿보인다.

또 '쉬 원티드' 라는 노래는 어쿠스틱 기타의 청아하고 경쾌한 연주에 시정(詩情)이 듬뿍 묻어나는 가사가 놀라우리만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번 음반 역시 1995년 '공무도하가' 이후 동양적인 서정성을 표현해온 그의 음악성과 맥을 같이 한다.

"틈틈이 뉴욕에서 미술 공부를 하면서 나만의 색을 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인상에 남는다" 는 그는 "미술에서 배운 것을 음악에서 실현해보고 있는 것" 이라고 했다.

현재 그는 일본 도시바 EMI 소속 가수. 새 앨범은 10월 1일 발매 예정이며 현재 녹음중인 10집 앨범은 내년초 선보일 계획이다.

"20대에는 우울증에 걸릴 만큼 힘들었던 적도 있었죠. 근데 지금은 그런 감정들이 많이 가라앉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음악도 많이 밝아진 것 같고요. 이제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그런 거 바라지도 않아요. 앞으로도 꾸준히 제 경험을 압축해 음악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음유시인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죠. "

8년간 일본을 오가며 생활했던 그는 26일 미술공부를 더 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났다.

글=이은주,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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