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민주당 경선에 대한 반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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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 글은 본지 22일자 박재창(朴載昌) 교수의 시론 '민주당대회의 원초적 결함' 에 대한 반론입니다.

어떤 허풍선이가 로두스 섬에서는 하늘 높이 뛰었다고 허풍을 치며 제 땅을 욕해대자 이를 듣던 사람이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봐라" 고 되받아쳤다는 이솝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제 땅의 현실에 발딛고 사고하라는 경종을 담고 있다. 우리도 선진국을 '로두스' 로 삼아 우리의 현실을 허풍치듯 매도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로두스로 삼아 새천년민주당의 전당대회를 혹평하는 박재창 교수의 비판은 바로 저 '허풍치는' 매도와 무관치 않다.

나름대로 문제가 없지 않은 선진국을 교과서로 삼는 비판은 우리 현실을 왜곡.폄하하고 의도가 석연치 않은 비방으로 귀착되기 십상이다.

새천년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이념.정책 결집과정을 결하여 자기 당의 당원들에게조차 '활력' 을 심어주지 못할 정도로 '원초적 불구' 라는 朴교수의 비판은 '경선과열' 을 지적하는 자신의 말과도 상치하는 사실왜곡이다.

민주당은 이미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정강.정책작업을 진행해 온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또한 정책홍보물.정책토론녹화물을 배포하고 지난 18일 공개정책토론회와 25일 사이버정책토론을 개최했다.

전국적으로 진행 중인 최고위원 후보 합동유세는 인권국가.정보강국, 4대 개혁과 생산적 복지, 남북화해.한반도정치, 국민화합 등 시대적 정책비전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이미 선거운동 개시 전에 민주당은 향응.금품살포의 위험이 큰 '개별적 대면접촉' 을 금하되 전화.인터넷을 통한 대의원 접촉은 무한정 허용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그 덕택에 이번 경선은 비교적 저비용으로 공정하게 치러지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관전평이다.

"선거과열이 지나쳐 후보들의 대의원 접촉을 금했고 이로 인해 경선이 통과의례로 전락했다" 고 혹평하려면 적어도 사실관계 정도는 정확히 짚고 있었어야 했다.

이번 임시 전당대회의 임무는 정강.정책 보강과 정식 지도부 구성이다. 총재는 이미 창당대회에서 선출했다. 당헌.당규에 따르면 총재선출은 2년 뒤 정기 전당대회의 과업이다. 따라서 이번에 총재를 뽑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어 이 대회를 '당권에 영향력이 없는 허구' 로 몰아치는 朴교수의 비판도 사실인식을 결하고 있다.

언론이 주목하듯 이번 경선은 당의 최고지도자들을 뽑는 선거인 만큼 후보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미래의 당권.대권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지닐 터다.

그러나 朴교수는 이런 상식과 달리 이번 경선을 '당권에 영향력이 없는 찻잔 속의 태풍' 으로 폄하하다가, 다시 최고위원들의 당권.대권 의지와 경선과열을 거론하는 자가당착을 범하고 있다.

최고위원 후보들은 당권.대권 의지를 우회적으로 피력하는 조심스런 행보를 하고 있다. 이 정도를 갖고 총재의 당부를 허울로 만드는 '표리부동' 의 전당대회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치다. 더구나 '경선결과 사전조정설' 까지 운위하는 것은 흑색선전으로 들린다. 경선열기를 감안할 때 사전조정은 누구도 꿈꿀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임있는 실사구시적 비판은 민초를 살리는 단비지만 '로두스 섬' 으로 허풍치는 무책임한 비판과 사실왜곡은 민심을 흐리는 황사인 것이다. 또 남의 집 잔칫상에 침뱉는 것도 결코 우리네 인심은 아닐 것이다.

황 태 연(동국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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