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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민이 뿔난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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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나마 일자리가 두 곳이어서 다행인데 올 7월부턴 걱정이 태산이다. 편의점 일을 접어야 하게 생겼다. 뉴욕 메트로폴리탄교통국(MTA)이 그가 타던 심야버스 운행을 중단하기로 해서다. 집까지 암흑천지 센트럴파크를 가로질러 걸어간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다. 그렇다고 비싼 택시를 탈 수도 없다.

더 큰 고민은 지하철 통학을 하는 14세짜리 아들이다. 7월부터 학생 무료 통학권이 없어진다. 89달러인 한 달짜리 교통카드를 사자면 점심은 굶다시피 할 판이다. 뉴욕시에서 무료 통학하고 있는 학생 42만 명과 50% 할인 혜택을 받고 있는 17만 명이 비슷한 처지다. MTA가 심야 지하철·버스 운행을 확 줄이기로 한 건 4억 달러 가까운 적자 때문이다. 지하철 두 개와 버스 21개 노선은 아예 없앴다. 그걸로도 모자라 학생 할인제도까지 손댔다.

MTA 적자는 일찌감치 예고됐다. 그런데도 뉴욕 주정부는 대책도 없이 보조금을 1억4300만 달러나 깎아버렸다. 주정부 코가 석 자라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MTA는 심야 운행 축소와 학생 할인 폐지로 맞섰다. 주정부와 MTA가 적자 책임을 놓고 탁구를 치는 통에 서민 등만 터지게 생겼다.

사는 데 바빠 정치와는 담 쌓고 살아온 미국 서민들이 그제야 뿔났다.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거나 말거나,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더 보내거나 말거나 그저 강 건너 불구경으로 여겼다.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정치야 당최 무슨 뜻인지 알아먹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지방정부·의회는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버스가 끊기고 통학권이 없어지니 당장 내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 뉴욕뿐만이 아니다. 미국 대부분 주가 앞다퉈 대중교통 서비스를 줄이거나 요금을 올리고 있다. 정부로부터 받던 보조금이 줄자 학교는 교사와 통학버스를 줄였다. 캘리포니아주에선 점심을 못 싸오는 학생에게 주는 무료 급식비를 깎기도 했다. 빈곤층 대상 의료보호에서 치과 치료를 빼버린 건 애교다. 주지사와 주의회 의원을 잘못 뽑은 대가가 어떤 건지 몸소 체험 중이다.

오는 11월 2일 치를 중간선거에 미국이 벌써 후끈 달아오르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특히 32개 주에서 벌어질 주지사 선거는 미국 사회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만큼 화끈한 변화를 몰고 올지 모른다. 서민 가슴에 대못을 박은 정치인은 이번에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거다.

한국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대통령·국회의원을 잘못 뽑으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고통은 온 국민이 나눠 진다. 지방선거는 이와 다르다. 사람 잘못 고른 대가는 그 고장 주민이 오롯이 치러야 한다. 게다가 가장 무겁고 고통스러운 짐은 늘 서민 몫이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