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임프리마투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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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프리마투르
리타 모날디 외 지음, 최애리 옮김
문학동네, 839쪽, 1만8800원

17세기 유럽을 무대로 한 역사추리소설 『임프리마투르』는 여러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우선 부부인 공동 저자 리타 모날디와 프란체스코 소르티는 각각 고전문헌학과 종교사, 17세기 바로크 음악을 전공했다.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두 사람은 소설 데뷔작인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바티칸 고문서실·도서관 등에서 10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가톨릭의 치부를 드러낸 소설 내용이 바티칸의 분노를 사 두 사람은 문서고의 출입을 금지당했고, 두 사람과 절친했던 한 신부는 책 출간 후 이탈리아에서 루마니아로 ‘좌천’당했다. 하지만 음악·미술·의학·점성술 등 당대의 인문지식이 풍부한 소설은 부부에게 ‘움베르토 에코의 적자(嫡子)’라는 평가를 안기기도 했다.

소설은 1683년 9월 11일부터 25일까지 로마의 ‘2류 숙소’ 돈젤로 여관에서 일어난 의혹 투성이의 사건을 따라간다. 뜨네기들의 집합소인 여관에서 육십대 투숙자가 갑자기 쓰러진다. 원인은 독살. 하지만 당시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곤 했던 페스트를 의심한 당국은 우선 여관을 봉쇄한다. 페스트로 확인되면 격리 수용을 피할 길이 없는 긴박한 상황. 여관 주인과 영국인 투숙자가 잇따라 쓰러지자 여관 사환과 과거 카스트라토였던 멜라니 사제가 사건 뒤의 진실 캐기에 나선다.

두 사람의 탐문에 따라 서서히 전모를 드러내는 사건의 배후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유럽의 패권을 잡기 위해 쟁투를 벌이는 왕권과 신권, 세력 확장을 위해서라면 이교도와도 손을 잡는 교황의 이중성 등이 밝혀진다. 소설 제목인 라틴어 ‘임프리마투르(imprimatur)’는 ‘그것이 인쇄되게 하라’는 뜻으로, 로마 가톨릭 주교가 인쇄물의 내용에 신앙과 윤리에 위배되는 부분이 없음을 확인하고 내리는 인쇄허가다. 부부 소설가가 계획중인 후속작품들의 제목 ‘세크레툼’‘베리타스’‘미스테리움’ 등과 이어서 차례로 읽으면 ‘모든 비밀은 공표될 수 있지만 진실은 끝내 미스터리로 남는다’는 뜻이다.

방대한 소설은 한껏 여유를 갖고 야금야금 읽어가야 할 것 같다. 시시콜콜한 의학지식과 점성술에 대한 소개, 유럽의 모든 왕실을 한 가족으로 묶을 수 있을 만큼 복잡했던 정략결혼, 매춘 실태 등 17세기 유럽의 정세와 풍속을 전하는 백과사전적인 정보가 빼곡하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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