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무더위 못참아 웃통벗고 활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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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왜 이렇게 웃통을 벗고 다니는 남자들이 많은가."

여름에 베이징(北京)을 찾는 외국인들이 한결같이 토해내는 말이다.아닌 게 아니라 대다수 베이징 남성들의 여름 복장은 너무도 간단하다.잠옷인지 구분이 잘 안가는 반바지 하나에 양말과 구두가 전부다.상의는 생략이다."한국 같으면 경범죄에 해당될텐데" 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

지난 7월 베이징의 한달 평균기온은 섭씨 29.5도. 1백59년 만의 최고 더위를 기록했다.이런 무더위 탓인지 집 밖으로만 나가면 동네 어귀는 물론이고 번화가나 상가 어디서나 이들 광방쯔(光膀子.웃통을 벗은 사나이)들과 부닥친다.

문제는 이들이 혼잡한 만원 버스에까지 올라 여성들의 비명을 자아낸다는 점이다.마침내 지난 14일 베이징 최대 석간 베이징완바오(北京晩報)에 독자 투고가 실렸다."다시는 발가벗고 다니지 말자" 는 한 초등학생의 제안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광방쯔가 설치고 다니는 것일까.베이징천바오(北京晨報)의 한 기자가 취재에 나섰다.천안문(天安門)을 중심으로 베이징 시내를 원을 그리며 도는 제2순환도로 번화가에서 이 기자는 30분 동안에 웃옷을 모두 벗은 남자를 17명이나 목격했다고 개탄했다.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공원 매표소 직원이 웃통을 벗고 표를 파는가 하면 고서화를 파는 유명 관광지인 류리창(琉璃廠)에도 광방쯔들이 빈번하게 출몰하고 있다.이들은 식당도 아무 거리낌없이 출입하고 있어 정장 차림의 외국인들을 경악시킨다.

중국의 이미지가 말이 아니다.아시안게임 개.폐회식이 열렸던 노동자체육장(工人體育場) 주위엔 해가 떨어지면 바람을 쐬려는 광방쯔들이 집단으로 몰려든다.

한마디로 웃통을 벗어젖힌 베이징의 모습이다.베이징천바오는 이를 '백색 환경오염' 이라며 2008년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중국 당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야만행위라고 성토했다.

최근엔 이러한 광방쯔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예사롭지 않다.경범죄로 규정해 웃통을 벗은 이들에게 벌금을 물릴 기세다.그렇게 된다면 웃통을 벗어젖힌 베이징의 여름 풍경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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