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두고온 탈북자 남몰래 흐르는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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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탈북자들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피해가 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가족들의 신분조차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1997년 11월 15일 북한을 탈출한 방영철(方英哲.32)씨는 "지난 15일부터 이산가족의 상봉 장면을 보며 생이별을 한 북의 가족들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다" 고 말했다.

方씨는 "나도 북한에 아버지(63).어머니(59)와 형(36). 누나(34).남동생(30) 등 일가족이 있는 이산가족" 이라며 "온 국민의 이산가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탈북자 꼬리표가 붙은 나같은 사람들에게 이산가족의 아픔을 물어오는 사람조차 없다" 고 했다.

方씨는 "탈북 후 가족들의 소식을 알아보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혹 피해를 보지나 않을까 싶어 숨죽여 지낼 수밖에 없다" 고 했다.

方씨는 나진 해운학교 항해학과를 졸업한 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관저에 생필품을 공급하는 중앙당 38호실에 근무하다 탈북을 결심했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 등으로 가전제품과 식료품.술 등을 구입하러 다니다 "국제ゴ肉【?무역을 해보고 싶었지만 북한에서는 제약이 많아 탈북했다" 고 한다.

方씨는 "떠나올 때 부모님께 아무런 말도 못드리고 나왔다" 며 "만나뵙고 용서를 구할 때까지 결혼도 미루고 있다" 고 했다.

97년 6월 북한을 탈출한 金모(34)씨도 "지난 15일 이산가족 중 모자상봉 장면을 본 뒤로는 북에 계신 노모 생각에 밤잠도 못 이룬다" 고 말했다.

金씨는 " '나도 이산가족이오' 라며 정부에 호소도 해보았지만 남북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한 때문인지 별다른 반응이 없다" 고 답답해 했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함남 함흥 출신의 탈북자 金모(42)씨는 "상봉자 중 고향 사람이 있어 가족들 소식을 물어보고 싶은 마음에 북측 상봉단 숙소가 있는 워커힐 호텔까지 갔다가 내 처지를 생각해 다시 돌아왔다" 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우리도 남북 분단이 낳은 희생자들이 아니냐" 며 "북측도 우리를 인정해 주고 남한 당국도 좀더 적극적으로 우리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주기 바란다" 고 밝혔다.

탈북자는 현재 국내와 해외에 각각 1천여명과 30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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