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상봉] 서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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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누가 혈육의 정을 막았던가. 무엇 때문에 이제서야 만나야 하는가.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장은 어떤 질문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저 만남의 장대한 드라마가 모든 것을 말해줄 뿐이었다. 남쪽 상봉장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그들은 만났다.

긴 기다림에 지쳐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와 깊은 주름살만 간직한 채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어했던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 안았다.

○…50년 만에 아들을 만난 정선화(94)씨는 아들 조진용(69)씨와의 상봉이 믿어지지 않는 듯 눈물 가득한 눈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내 실신했다. 상봉의 감격이 너무 컸던 때문이었다.

조씨는 "오마니, 저 왔어요. 제가 왔단 말입니다. 이 불효자식…" 이라며 물을 권했지만 정신을 잃은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어머니를 의료진이 응급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오마니, 오마니" 만 연발했다. 그러나 결국 정씨는 아들의 간절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이동침대에 의지한 채 상봉장을 빠져나갔다.

○…북한 '계관시인' 오영재(65)씨는 형 승재(68·한남대 교수)씨와 동생 형재(64·서울시립대 교수)씨를 얼싸안고 검버섯 핀 얼굴을 눈물로 적셨다. 오씨는 이날 상봉장에서 1991년 어머니의 생존 소식을 우연히 전해듣고 지었다는 '아! 나의 어머니' 를 읊조렸다.

"오늘도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다니/그것은/캄캄한 밤중에/문득 솟아오른 해님입니다/한꺼번에 가슴에 차고 넘치며/쏟아지는 기쁨의 소나기입니다." 오씨의 어머니 곽앵순씨는 95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의 이지연(53)아나운서는 오빠 래성(68)씨를 보자마자 "오빠, 오빠 맞지" 라며 오빠의 야윈 몸을 부둥켜 안고 눈물을 쏟았다. 이씨는 "나 매일 오빠 돌아오기를 기도했어" 라며 울먹였다.

래성씨도 4명의 누나 이름을 흐느끼는 음성으로 하나씩 부르다 결국 고개를 숙인 채 차오르던 울음을 터뜨렸다.

○…조선화의 거장인 정창모 만수대창작사 화가는 준희(61)·남희(53)두 여동생을 끌어안고 팔을 풀지 못했다.

"전쟁 이후 처음이디. 살아있었구만, 살아있었어. " 정씨는 오빠의 품에서 쓰러져 통곡하는 동생을 부축하며 "이제 만났어. 내 동생들을 말이야"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동생들은 "오빠, 오빠, 오빠.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라며 지난 세월을 한탄했다.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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