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오늘은 통일원년 8.15 더많은 인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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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45년 8월 15일 일본 국기를 변조한 생전 처음 보는 태극기라는 것을 들고 미친 듯이 환희하는 어른들을 따라다닌 요새 말로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기억이 아득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8.15는 민족 분단의 시작이었고, 이제는 그런 8.15를 속절없이 쉰다섯번째나 맞는 노년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수행하고 돌아온 올 8.15는 지난 쉰네번의 그것과 다른 새로운 8.15가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45년 8.15가 분단 시작의 8.15였는데 비해 2000년 8.15는 늦게나마 통일이 시작되는 8.15라 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2000년에 맞는 55회째 8.15는 통일 원년 8.15가 될 수 있을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분단시대 역사 반세기를 통해 처음으로 우리식 통일방법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고, 올 8.15는 우리식 통일맞이 원년의 8.15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 아는 일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 분단된 민족 중 베트남은 무력통일을 했고 독일은 이른바 흡수통일을 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일찍이 6.25 전쟁을 통해 무력통일이 기도됐으나 가능하지 않았고, 독일 통일 후 흡수통일이 강하게 희망되었지만 역시 가능하지 않았으며 또 앞으로도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이른바 주변 4강의 이해관계가 예민하게 대립돼 있는 한반도가 가진 지정학적 조건이 베트남이나 독일과 다르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무력통일도 흡수통일도 가능하지 않음을 알게 된 한반도 남북의 두 정권 당국자들이 오랜 시행착오와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겨우 찾아낸 것이 '협상통일' 방법이며, 그 시작이 바로 6.15 남북공동선언의 발표라 할 수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사이공 함락 그날로 이뤄진 베트남식 통일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이뤄진 독일식 통일도 아닌, 20년 30년을 두고 차츰차츰 해 갈 수밖에 없는 협상 통일임을 남북 당국자들이 알게 됐고, 그것을 서로 약속하게 된 것이 바로 6.15 남북공동선언이라 할 수 있다.

공동선언 발표 후 남북은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이산가족 상봉을 8.15를 기해 실행하게 됐고 각료회담을 열어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다시 여는 일 등에 합의했는가 하면 남쪽 언론사 사장들이 북쪽을 방문, 남북간의 언론 협조를 약속했다.

그리고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철도 연결 등이 논의되고 있으며, 민간 차원에서도 남쪽 자본에 의한 북쪽 공단건설 등이 거론되고 있다.

앞으로도 정상회담.각료회담.국회회담 등이 계속 열리면서 남북 협조 및 협상통일의 필수 단계인 평화공존 방안들이 논의될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그날로 우리식 통일, 즉 남북 협상에 의한 점차적 통일은 이미 시작됐으며 2000년의 8.15는 그런 의미에서 통일 원년 8.15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역사는 직선적으로만 가지 않는다. 7.4 공동성명 후와 남북합의서 교환 뒤의 냉각이 그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남북 당국자끼리의 성명이나 합의서 교환은 물론 선언까지도 정치적 이해에 따라 얼마든지 '휴지' 로 될 수도 있었고 역이용될 수도 있었으며,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등장하느냐에 따라서는 반작용이 예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00년 8.15가 통일 원년 8.15가 될 것이라 말했지만 그것은 당국자들이 우리식 통일, 협상통일의 불가피성을 이해하는 것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남북 7천만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식 통일은 시일이 많이 걸리며 인내와 양보가 불가결한 협상통일일 수밖에 없음을 철저히 인식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2000년 8.15가 통일 원년 8.15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강만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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