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서 재혼한 부인 끝내 남편 상봉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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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북한의 河경(74)씨가 상봉을 희망해온 부인 金모(78.경기도 성남시)씨는 끝내 만남의 꿈을 접었다.

河씨의 동생 河상(64)씨는 11일 "형수가 결국 상봉을 포기해 형님의 두 아들 문기.정기와 누님.여동생 등 5명이 이번 만남에 참가하기로 했다" 고 밝혔다.

河씨는 "형님이 사라진 후 갖은 고생을 하며 3형제를 키우던 형수가 결국 10여년 뒤 재혼했는데 이에 대한 심적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이번 만남을 포기했다" 고 말했다.

서울영화소의 촬영기사로 일하던 河경씨는 6.25 발발 직후 아내 金씨와 세 아들을 두고 서울 을지로의 집을 나선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金씨는 여자 혼자 힘으로 세상을 헤쳐나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결국 재혼했고 두 남매를 더 두게 됐다.

金씨는 북한으로 간 남편에 대해 자식들에게 일절 알리지 않았기에 세 아들은 아버지가 전쟁 중 숨진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지난달 북한에서 보내온 상봉 명단에 가족.친척들의 이름이 포함돼 있는 것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50년의 진공 같은 세월을 넘어서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는 감격에 세 아들은 흥분했지만 막상 金씨는 움츠렸다.

비록 재혼한 남편이 8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차마 북에서 오는 남편 앞에 설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언론 취재 요청도 모두 거절했다.

자식들은 "막상 결정하고 나니 어머님이 '사실은 너무 만나보고 싶다' 고 눈물을 쏟고 계셔 마음이 아프다" 고 말했다.

자식들은 또 "아버님께 어머님 사진이라도 보여드리기 위해 가족 앨범을 정리하고 있다" 고 덧붙였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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