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깨는 선수 대표팀서 나가라” 칼 빼든 육상연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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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대한육상경기연맹(회장 오동진)이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1년 앞두고 ‘정신력 재무장’을 키워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육상연맹은 간판 선수들을 국가대표팀에서 대거 탈락시키는 ‘충격 요법’ 카드를 꺼내들었다.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체계적인 준비를 위해서는 올해가 중요하다는 위기 의식에서 비롯됐다. 6일 시작하는 사상 첫 합동훈련부터 한국 육상의 패배주의를 걷어낼 계획이다.

◆나태한 선수들은 집에 가라=5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육상대표팀 발대식에 수년간 남자 100m와 200m에서 1~2위를 다퉜던 임희남(26)과 전덕형(26), 남자 110m 허들의 1인자 이정준(26) 등 국가대표 단골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장재근 트랙 기술위원장은 “세 선수 모두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최근 들어 계속 기록이 내려간다. 재능은 있지만 정신력이 뒤따르지 못한다. 이들 때문에 대표팀 분위기를 망칠 순 없다”며 “며칠 전 축구 국가대표가 파주에서 체력 테스트 받는 걸 보라. 연봉 수억원 받는 선수들도 죽어라 뛰지 않나. 그 정도 정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잘 뛰고 못 뛰고는 나중 문제다”고 해이함을 질타했다.

서상택 육상연맹 홍보이사는 “과거 인정주의에서 벗어나 철저히 원칙주의로 선수들의 정신력을 뜯어고치겠다는 연맹의 의지로 봐달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라톤의 지영준도 비슷한 케이스다. 지난해 1위 기록 보유자이지만 소속팀 코오롱과의 불화를 겪고 있어 뽑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로지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닌 선수는 필요 없다는 말이다. 합동훈련에 앞서 일벌백계로 대표팀 전체의 분위기를 다잡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훈련은 스파르타식으로=오동진 육상연맹 회장은 “영화 ‘국가대표’를 보고 육상에는 왜 저런 사람들이 없을까 자괴감을 느꼈다”며 “열정과 꿈이 없는 사람은 당장 이 자리에서 관두길 바란다. 집착에 가까운 승부욕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지도자를 향해서는 “강한 선수를 만드는 건 결국 지도자다. 지도력과 전문성을 발휘해 달라”고 주문했다.

지난해 12월 오 회장은 외국인 코치들과 워크숍을 하고 목표 관리(MBO) 등 열띤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오 회장은 “지도자들이 각성해야 하고 선수들도 의식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맹은 “따뜻한 해외에서 성과 없는 훈련을 하기보다는 국내에서 스파르타 훈련으로 정신을 개조하고 기초체력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분간 해외 전훈 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리하여 육상은 사상 처음으로 종목을 뛰어넘은 합동훈련에 돌입한다. 장 위원장이 이끄는 단거리, 중거리, 허들 대표팀 33명은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한다. 문봉기 총감독이 지휘하는 도약과 투척 대표팀은 목포축구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은 부산에서 새로 영입한 아르카디 코치의 지도를 받는다. 마라톤과 경보 선수들은 황영조 마라톤 기술위원장과 폴란드 출신 보단 브라코스키 코치의 지도 아래 제주도에서 훈련한다.

한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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